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계엄군이 탄 헬기가 서울 상공에 처음 진입한 건 저녁 11시 43분쯤이다. 당시 특수전사령부 예하 특수작전항공단 602항공대대는 작전을 수행한 계엄군의 비행 허가를 내달라고 수도방위사령부에 최초 요청한 것은 그보다 54분 전인 저녁 10시 48분쯤이다. 계엄군은 수방사가 비행 허가를 보류하자 합동참모본부와 육군본부 등에도 지속적으로 여러 차례 요청했다.
수방사는 규정에 따라 최초 계엄군의 헬기 진입 허가를 보류한 것은 규정상 비행 목적이 확인되지 않은 비행은 허가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계속된 요청에 수방사가 해당 건을 보고한 건 합동참모본부다. 최상급 부대에 승인에 대한 판단을 맡겼지만 합참이 수방사에 “관련 사항이 없다”고 답변해 계엄군의 비행 승인 보류는 계속 이어졌다.
그 사이에도 계엄군은 서울 상공에 대한 헬기 진입을 허가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결국 수방사가 접촉한 건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본부다.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인 상태에서 육군본부에 승인 여부를 판단 받으려는 시도다. 당시 전화를 받은 정보작전참모부는 최초에 보고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관련 업무를 하는 곳도 아니라며 무시했다.
그러다 전화를 끊은 정보작전참모부가 수방사에 다시 전화를 걸었고 그 시각은 저녁 11시 31분쯤으로 육군본부가 수방사에 계엄군의 헬기 진입을 허가했다. 이런 과정에서 비행 승인이 43분 정도 늦어졌고 계엄군은 허가 약 12분이 지난 밤 11시 43분쯤에야 서울 상공에 진입해 5분여 만에 국회에 도착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계엄군이 최초로 비행 허가를 내달라고 요청한 지 55분 후에야 서울 상공 진입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계엄군 헬기의 서울 통과가 수방사의 허가 지연을 초래해 국회 진입이 지연됐지만,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가 4일 새벽 1시 1분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했고 곧바로 표결에 들어가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 약 155분 만이다.
결과적으로 계엄을 막은 중요한 요인이 된 계엄사령부와 수방사 간 헬기 출동을 둘러싼 혼선은 왜 일어날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대통령 경호와 관련해 서울 상공의 비행금지구역(P73)과 비행제한구역(R75)이 지정된 관할공역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관할공역에 대한 비행승인 허가(보류)에 대한 통제권은 수도방위사령관이 갖고 있다.
다만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통제권자가 변경된다. 예를 들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R75는 평상시 제 명의로 통제하고 승인받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며 “사전에 협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통제하고 있었는데 당시 계엄령이 선포돼 R75 권한 통제는 수방사령관이 아닌 계엄사령관에게 (넘어가)있었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휴전선 접경지역에 대해 비행을 통제하는 한국전술지대 비행금지구역(P518)도 있다. 개인의 레저 및 여가 목적의 비행은 제한되며, 공공기관의 공공목적 혹은 영리 목적에 한해 비행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은 합동참모본부장이 보유하고 있다.
우선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일정한 반경으로 정해진 비행금지구역(P-73A)은 남·서쪽으로는 한강,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경계선으로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비행이 허락되지 않는지역이다. 강북 지역은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 항공부대가 있는 의정부시, 고양시 덕양구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비행금지구역이다. 의정부는 미군의 헬리콥터 부대가, 고양시 덕양구에는 한국항공대학교와 육군항공사령부 예하 부대 등이 있다.
P73 외관으로 넓게 지정된 R75는 수도권 비행제한구역(R75)으로, P73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하는 항공기를 사전에 식별하고 경고하기 위한 통제공역이다.
비행승인 대상 공역 중에 P73은 비행승인 신청은 5일전, R75는 비행승인 3일 전에 해야한다. 대통령실이 포함되는 비행금지구역(P73)이 이틀이나 일찍 요청해야 한다는 것은 진입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반증이다.
통상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도 중심지는 대통령, 군주 등 국가원수가 거주하고 정부 수뇌부가 모인 곳은 모두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된다. 예를 들어 중국도 베이징 중심지는 비행금지구역이고, 일본의 도쿄도 황궁과 총리관저 근처의 도심지는 비행금지구역이다.
수도권 비행금지구역(P73) 및 비행제한구역(R75) 내에서 비행승인을 받아 비행 시에도 수방사령관이 별도로 정하여 통보하는 절차(보안점검, 경로‧고도 변경지시 및 운항 제한 등)를 따라야 한다.
국방부가 지난해 8월에 공개한 ‘P73 인근지역 비행안내서’를 준용해야 한다.
이는 2022년 12월 26일 북한 소형 무인기 5대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우리 영공을 침범하고, 그 중 1대는 P73 북단을 일시 침범한 도발을 감안해 위규비행 시 군의 대응에 관한 내용으로 민간에 전격 공개했다.
(RK)P73 인근지역 비행지침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의 항공정보간행물(AIP)에서나 조회해볼 수 있는 자료였지만, 내용을 다듬어 안내서로서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인데, 북한의 무인기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우선 항공기가 사전 통보 또는 인가 없이 비행제한구역(R75)을 무단으로 침범한 경우 경고방송과 조명탄 발사 등을 통해 퇴거 조치될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 항공기가 통제속도 미준수, 급강하, 계획된 고도·경로 이탈 등의 공격적인 형태로 P73 방향으로 계속 비행하거나 P73을 침범할 경우 경고사격을 받거나 교전규칙에 따라 피격할 수 있다.
R75는 P73을 침범하는 항공기를 사전에 식별하고 경고하기 위해 서울 상공에 P73 보다 넓은 범위로 설정돼 있다. 다만 사전 승인되지 않은 민간항공기가 기상·통신두절·항법착오·비행통제장치 고장 등의 불가피한 사유로 R75 내로 진입한 게 식별된 경우엔 경고사격은 받지 않는다.
다만 항공교통관제기관 또는 항공기와 교신을 통해 민간항공기의 상황을 지속 파악하게 되고 필요시 퇴거 조치될 수 있다. 역시 퇴거 조치를 따르지 않고 공격적인 형태로 기동하는 경우엔 자위권 행사 목적의 최후 수단으로 무장 사용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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