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노태우는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의 선고를 내린다.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17년형으로 확정했다. 전두환·노태우는 재판정에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는 국헌문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수용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대신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는 일종의 협박 행위로 내란죄의 구성 요건인 폭동에 해당한다”고 했다. 특히 신군부가 비상계엄 확대를 위해 국회를 봉쇄한 것이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우리 형법은 국가와 헌정질서 보호를 위해 내란죄와 내란수괴는 가장 중대한 범죄로 간주한다. 헌법은 현직 대통령에게 불소추특권을 부여했지만 내란죄는 예외다.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내란죄는 그래서 더 엄중하게 심판했다.
하지만 법의 영역은 여기까지였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후보들은 ‘화합’을 이유로 전두환·노태우의 사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정치적 셈법이 더 강하게 작동하면서 전두환·노태우는 1997년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협의로 사면 복권됐다. 사저 경비를 위해 경찰이 투입되고 경호비도 연간 9억 원 정도 들어갔다고 한다.
형법과는 달리 우리 정치권은 내란죄에 대해서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렇게 관대했다. 화합을 목적으로 한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이 실제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갖고 왔는지도 미지수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타협과 설득의 민주주의 과정은 사라졌다. 힘과 극단의 여론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 혈안이다. 중간지대의 목소리는 작아졌고 양쪽 끝의 극성스러운 집단만 설쳐 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유튜브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 ‘확증편향’이 갈수록 심화하자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화약고 같았다. 급기야 민주주의가 비교적 완성됐다고 평가 받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서 비상계엄. 많은 이들의 우려를 우리는 늦은 밤에 목도했다. “마치 초현실 같다”는 이들이 많았을 정도로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계엄’이라는 핵폭탄을 터트린 12월 3일 밤의 국무회의도 허술했다. 기록과 속기는 물론 개회 선언과 종료도 없었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호출 받은 국무위원들 중 11명이 밤 10시 10분쯤에 다 모였고 형식적인 회의 시간은 대략 2~3분에 불과했다.
“계엄은 절대 안 된다”는 일부 국무위원들의 만류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단호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난 뒤 국무위원들은 휴대폰 동영상을 통해 들려오는 윤 대통령의 육성을 통해 실제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후 45년 만의 계엄은 이렇게 허망하게 선포됐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300명 안팎의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했고 주요 인사의 체포조까지 가동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70년간 일군 성취와 자부심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국회는 발 빠르게 움직였고 계엄 선포 2시간이 채 안 돼 해제를 결의한다.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선포,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11일간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충격과 공포, 혼란의 시간이 이어졌다. 외환·주식시장은 극심하게 출렁였다. 경제가 침체 국면을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또 정치에 발목이 잡혔다. 우연이겠지만 8년 전처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을 앞두고 우린 또 대미 정상외교가 공백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 따져 묻고 있다.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항변도 했다. “끝까지 싸우고 절대 포기 않겠다”고 한다.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만큼 이제 법의 잣대로 하나하나 따지면 된다. 다만 만약 죄가 성립되면 그 어떤 사면도 줘서는 안 된다.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이 불러일으킨 21세기 계엄을 또 겪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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