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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주와 함께 나아간다" 별처럼 빛난 그녀들의 연대

[리뷰]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7년 만에 무대 돌아온 안은진

천재 천문학자 헨리에타 역할

망원경 사용 금지당한 여성들

우주의 크기 측정방법 찾아내

헨리에타 역을 맡은 배우 안은진. 사진제공=국립극단




“거의 다 왔어요. 계속 하세요.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생각하세요. 답은 그 안에 있어요.”

수북이 쌓여있는 공책을 바라보며 머리를 뜯는 헨리에타에게 선배 애니가 말한다. 그는 “지금 당신은 ‘기회로 가는 길목’에 있다”며 헨리에타를 격려한다.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문화예술계도 뒤숭숭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시국 선언이 이어졌고, 몇몇 공연과 전시에서는 주말 예매 티켓이 대거 취소는 일도 있었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는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도 전석·전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기의 일등공신은 배우 안은진이다. 공연 티켓은 ‘연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TV 드라마를 통해 활약한 안은진이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찌감치 마감됐다.

천재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1868~1921)’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업적을 담은 ‘사일런트 스카이’는 헨리에타와 동료들이 위대한 인류의 업적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겪는 진심과 고뇌, 연대를 담은 서정적인 과학극이다. 작품 속에서 헨리에타와 동료들이 보여주는 ‘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결속력을 다지고 있는 대한민국 시민 사회를 지지하고 격려한다.



헨리에타는 여성이 투표권조차 갖지 못했던 19세기 초 우주의 크기를 측정하는 토대를 마련한 천문학자다. 헨리에타는 하버드대학 천문대 계산원으로 취직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망원경을 사용하지 못한다. 단지 육안으로 사진 건판에 찍힌 관측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그의 노동의 전부다. 무척 사소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헨리에타와 동료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일에 매진한다. 현실은 그들에게 수차례 좌절을 안겨주지만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한다. 세상이 침묵을 강요할수록 헨리에타와 동료들은 더 강해졌고, 결국 헨리에타는 끈질긴 연구끝에 먼 은하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기성 학자들은 “우주는 광활하지 않고, 경이롭지 않다”며 헨리에타의 발견을 폄하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시까지 기성 과학자들이 이뤄낸 업적을 지키는 것뿐이다.

하지만 결국 헨리에타의 연구는 진리가 된다. 그의 연구인 ‘레빗 법칙(세페이드 변광성의 광도와 깜빡이는 주기의 관계)’은 1929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허블의 법칙’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헨리에타는 세상에 “우주는 우리를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 따라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우주는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고 말한다. 결국 우주와 함께 우리 모두는 천천히 진보하고 있으니, 성실하게 자신의 소명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헨리에타와 동생 마거릿. 사진제공=국립극단


사일런트 스카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극중 애니 역을 맡은 배우 조승연은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게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나 자신을 대신할 수 없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28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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