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선수로 첫손을 다투는 손흥민(32·토트넘)이지만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우승 트로피다. 클럽팀과 대표팀을 통틀어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이다. 클럽팀으로는 1부 리그에 데뷔한 2010년부터 올해까지 함부르크, 레버쿠젠(이상 독일), 토트넘(잉글랜드)에서 15년간 어떤 우승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라는 세계 최고 무대에서만 뛰어 우승 경쟁이 워낙 치열한 탓도 있다.
손흥민은 어느덧 선수로서 황혼기를 앞뒀다. 구단은 재계약에 미온적이고 이 사이 이적 루머만 부풀려지는 상황이다. 경기장 밖은 이렇게 어수선하지만 손흥민은 여전히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20일(한국 시간) 난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환상적인 ‘바나나 코너킥’ 결승골을 꽂은 그는 프로 첫 우승에 두 계단 앞으로 다가섰다.
이날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2025 카라바오컵(리그컵) 8강전은 3대0→3대2→4대2→4대3으로 이어진 ‘스릴러’였다. 후반 초반까지 3대0으로 넉넉하게 앞서던 토트넘은 이후 골키퍼의 연속 실수로 2골을 내줘 턱밑까지 쫓겼다. 흐름이 완전히 맨유 쪽으로 넘어간 것 같던 후반 43분에 누구도 예상 못한 골이 손흥민의 발에서 나왔다.
왼쪽에서 감아 찬 오른발 코너킥이 바나나처럼 휘며 골문 쪽으로 향하더니 상대 골키퍼가 뻗은 주먹과 크로스바 사이를 절묘하게 통과해 골망에 꽂힌 것이다. 게임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에 깜짝 놀란 동료들은 손흥민을 향해 달려갔고 손흥민은 장난스럽게 동료들을 피해서 달리며 기쁨을 누렸다. 맨유가 후반 추가 시간에 만회골을 넣었지만 4대3 토트넘 승리로 끝나면서 손흥민이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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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대진 추첨 결과 토트넘의 다음 상대는 리그컵 최다 우승(10회)을 자랑하는 올 시즌 EPL 선두 리버풀로 정해졌다. 토트넘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던 2019년 토트넘과 손흥민의 우승 꿈을 꺾고 트로피를 가져갔던 팀이 바로 리버풀이다. 또 다른 4강전은 아스널과 뉴캐슬의 대결. 준결승전은 홈앤드어웨이로 2025년 1월부터 치러진다.
리버풀은 벅찬 상대지만 16강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8강에서 맨유를 넘은 토트넘의 기세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손흥민의 발에 불이 붙었다. 12월 3경기에서 연속 득점으로 3골 2도움을 몰아치면서 시즌 전체 기록을 7골(EPL 5골, 유로파리그 1골, 리그컵 1골)로 늘렸다. 3골을 보태면 9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23일에는 EPL 홈경기로 먼저 리버풀을 만난다.
햄스트링 부상 여파로 힘겨운 가을을 보냈던 손흥민은 최근까지는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와 함께 여러 리그의 다양한 구단과 이적 루머에 휩싸였다. 터키 갈라타사라이 얘기는 끊이지를 않고 독일 바이에른 뮌헨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실제로 토트넘과 계약이 이달 안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1월부터는 ‘보스만 룰’에 따라 다른 구단과 자유롭게 이적 협상을 할 수 있다. 10년을 토트넘과 함께한 손흥민에게 이번 우승 기회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날 선제골과 두 번째 골의 발판 역할을 하는 등 풀타임 활약한 캡틴 손흥민은 “내 골도, 경기도 모두 미쳤다”며 “리버풀과의 준결승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인이 아닌 팀으로 함께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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