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인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골프를 즐기고, 이를 보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도 그랬다. 1888년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인근 출신으로 뉴욕에서 사업을 하던 존 리드는 ‘고향 사람’ 올드 톰 모리스가 제작한 골프채로 친구들과 자신의 집 맞은편에 있던 목장에 만든 3홀 코스에서 골프를 즐기곤 했다. 여름 내내 골프를 친 그들의 그해 마지막 라운드는 11월 14일이었다. 리드는 라운드를 마친 뒤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곤 그 자리에서 정식으로 골프클럽을 결성하기로 했다. 클럽의 이름은 골프 본고장의 지명을 따 ‘세인트앤드루스’로 정했다.
미국의 세인트앤드루스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는 발음은 같지만 세인트의 표기법과 소유격을 나타내는 아포스트로피(’)가 있느냐 없느냐(미국은 Saint Andrew’s, 스코틀랜드는 St. Andrews)가 달랐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은 그렇게 탄생했고, 리드는 오늘날 ‘미국 골프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세인트앤드루스(Saint Andrew’s) 멤버들은 1892년에는 뉴욕 남동부 용커스 지역에 사과 과수원을 지나는 새로운 코스를 마련했다. 리드와 멤버들은 라운드 도중이나 후에 사과나무 가지에 옷을 걸고, 그 아래에 모여 휴식을 취하면서 스카치위스키를 마시곤 했다. 사과나무가 그들의 클럽하우스 역할을 했던 셈이다. 미국 골프의 개척자로 꼽히는 세인트앤드루스의 초기 멤버들을 ‘애플 트리 갱’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세인트앤드루스 클럽하우스에는 지금도 그 당시 사과나무 가지가 전시돼 있다.
1893년에는 로드아일랜드주에 뉴포트 골프클럽이 생겼다. 그러면서 이듬해인 1894년에는 세인트앤드루스와 뉴포트에서 각각 ‘내셔널 아마추어 챔피언십’이라 부른 골프대회가 열렸다. 골프클럽도 점차 늘게 되자 미국 전체를 관장하는 골프협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해 12월 22일 미국골프협회(USGA)가 설립됐다.
USGA 설립을 주도한 초기 5개 클럽은 세인트앤드루스, 뉴포트, 시카고, 시네콕힐스, 그리고 더컨트리다. USGA는 처음 5개 클럽으로 시작했지만 1910년에는 267개, 1930년에는 약 1000개, 1980년에는 5000개를 돌파했고 지금은 9700개 이상의 클럽이 가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SGA가 결성되면서 비로소 미국 최초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가 열렸다. 1895년 뉴포트 골프클럽에서 US 아마추어 대회가 열린 게 그 시초다. 그 하루 뒤 같은 장소에서 US 오픈이 개최됐고, 그 몇 주 뒤에는 US 여자아마추어 대회가 치러졌다.
골프는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USGA는 어떤 측면에서는 진보적인 모습도 보였다. 1896년 시네콕힐스에서 열린 제2회 US 오픈 때 각각 흑인과 인디언 최초의 프로 골퍼였던 존 시펀과 오스카 번의 출전을 허용했던 점에서 그렇다. 당시 선수들이 두 선수의 출전에 반대하며 대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하자, USGA 회장은 “설령 시펀과 번 두 명만 출전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회를 진행하겠다”고 밀어붙였다. 35명이 참가한 당시 대회에서 시펀은 공동 5위, 번은 공동 21위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USGA를 이끌고 있는 프레드 퍼폴 회장도 흑인이다.
현재 USGA는 US 주니어, US 아마추어, US 오픈, US 시니어오픈 등 모두 15개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US 주니어, US 아마추어, US 오픈에서 각각 3회 우승해 ‘골프 성인’ 보비 존스(미국)와 함께 US 내셔널 타이틀 최다 우승(9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75년 12월 30일에 태어난 우즈는 2026년부터 US 시니어 오픈에 출전할 수 있다. 만약 우즈가 US 시니어 오픈 정상에 오르면 US 내셔널 타이틀 대회 ‘그랜드 슬램’과 최다승 기록을 새롭게 작성하게 된다.
USGA는 현재 영국의 R&A와 함께 전 세계 골프 룰을 관장하고 있다. 특히 USGA는 오늘날 가장 큰 골프시장인 북미를 관할하고 있다. USGA 창립 130주년인 올해 12월을 맞아 그 역사를 간단히 알아봤다. 참고로 대한골프협회(KGA)는 내년에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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