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전 모의·포고령 작성 의혹을 받고 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서 계엄 당시 ‘북한 도발을 유도하겠다’는 취지의 메모가 발견됐다. 계엄 준비 정황이 담긴 ‘스모킹건’이 잇따라 발견되는 등 수사에는 속도가 붙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공조수사본부의 출석 요구서 수취를 거부하고 있어 실제 소환 조사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례 기자 간담회를 열고 “노 전 사령관의 60~70쪽 분량의 수첩에서 계엄과 관련된 단어가 다수 발견됐다”며 “‘국회 봉쇄’와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 등의 표현이 있었다”고 밝혔다. 계엄 후 북한을 타격해 의도적으로 전시 상황을 만들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구체적인 증거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 내용과 함께 수첩에서 발견된 것은 ‘수거 대상’으로 지목된 주요 정치인과 언론인·판사 등이다. 일부 인물의 경우 구체적 이름까지 적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 대한 수용·처리 방법도 메모돼 있었다.
‘사살’ 표현도 적혀있었다.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사살이라는 표현이 있었냐”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국수본은 이달 1일과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노 전 사령관이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과 경기도 안산시 소재 롯데리아에 모여 이른바 ‘햄버거 회동’을 하면서 ‘계엄 별동대’ 역할을 할 ‘수사2단’ 편성 계획도 마련했다고 밝혔다. 계엄 발령 후 수사 기능은 공식 조직인 합동수사본부 내 합동수사단이 맡아야 하는데 노 전 사령관을 주축으로 계엄과 관련한 자체 조직을 꾸리려 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국수본에 따르면 수첩에는 ‘수사2단’ 내에 부서 3개를 만들어 ‘햄버거 회동’ 4인방이 각자 담당하는 형태로 조직 편성 계획이 적혀 있었다. 조직의 규모는 60여 명으로 첫 임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인사 발령과 관련한 행정 사항이 포함된 일반 문건 작성도 완료됐으며 해당 문건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봉투에서 꺼내 노 전 사령관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전 이미 특수 임무를 부여한 조직을 만들려는 정황이 포착되는 등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지만 25일 윤 대통령이 실제 소환 조사에 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국수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방부 조사본부가 공동으로 구성한 공조본이 이달 2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발송한 출석 요구서가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수단 관계자는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실·부속실에 발송한 출석 요구서는 ‘수취인 불명’, 대통령 관저는 ‘수취 거절’인 것으로 확인된다”며 “전자 공문도 미확인 상태”라고 밝혔다. 공조본은 앞서 이달 16일에도 윤 대통령에게 18일에 조사받으라는 출석 요구서를 발송했지만 수취 거부됐다.
여기에 윤 대통령 측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소환 조사에 응하지 못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이른바 ‘성탄절 조사’가 불발될 수 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윤 대통령의 수사 변호인단 및 탄핵심판 대리인단 구성에 관여하는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며 “비상계엄이 주된 수사 사항이라고 한다면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의 난맥 상황 전반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데 과연 수사기관이 수사의 자세가 준비 돼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이후에 수사를 받았지만 본인은 상황이 다르다는 취지다.
공조본은 25일 조사가 불발될 경우 윤 대통령에 대해 체포 영장을 청구하는 등 신병 확보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통상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소환에 수차례 불응하면 법원에 체포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국수본은 두 차례 불발된 용산 대통령실 강제수사에 대해서도 “이달 22일 대통령 경호처와 대통령 비서실에 윤 대통령의 비화폰(보안폰)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못해 기록을 삭제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기록 보전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국수본과 공수처·국조본이 함께 구성한 공조수사본부(공조본)는 이달 11일과 17일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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