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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를 수 없는 ‘피팅의 시대’

골퍼 스윙 제각각…최적화 맞춤 작업 필요

테일러메이드 R7 드라이버 셀프 피팅 시초

소재의 진화와 함께 피팅도 더욱 정교해져

분석기 발달·높아진 골퍼 수준으로 활성화

렌치를 몇 번만 돌리면 클럽을 자신에게 최적화할 수 있는 시대다. 사진 제공=테일러메이드




당신이 신발 매장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자. 진열대에는 수많은 제품이 놓여 있다. 디자인은 물론 사이즈와 폭, 깔창의 두께 등이 다양하다. 사람마다 발의 크기는 같더라도 발의 모양이나 두께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이즈라도 발의 편안함과 착용감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으면 걷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자칫 뒤꿈치나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등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골프스윙은 지문과 같다’는 말이 있다. 모든 골퍼들의 스윙은 제각각이라는 뜻이다. 골프장비도 신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신체 조건과 스윙에 꼭 맞는 클럽을 찾아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골프클럽을 각 개인에게 최적화시킨다는 골프 피팅의 개념은 여기서 출발했다. 클럽 피팅은 과거에는 프로 골퍼나 상급자가 하는 것으로 오해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보편화됐다. 조사에 따르면 피팅은 실력에 상관없이 모든 골퍼에게 스코어를 낮추는 긍정적 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전문 매장에서 이뤄지는 피팅은 전문 피터와의 심층 상담과 분석 등을 통해 진행됨으로써 골퍼에게 최적화된 클럽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1~2시간의 집중된 피팅 시간 동안 골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클럽 제안과 전후의 데이터 비교를 통해 골퍼가 최선의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골퍼는 또한 언제나 최상의 퍼포먼스 발휘에 목이 말라 있다. 전문적인 피팅 외에 스스로 레슨과 연습, 그 밖의 방법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셀프 피팅 또는 셀프 튜닝이다. 고도로 진화된 클럽과 각종 기술의 발전이 골퍼의 니즈와 부합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의 신체조건, 스윙, 구질 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골퍼가 스스로 클럽을 최적화시킨다는 개념으로 날씨, 코스 조건, 라운드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클럽의 특성을 즉각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피팅은 실력에 상관 없이 모든 골퍼에게 효과가 있다. 사진 제공=테일러메이드


테일러메이드가 쏘아올린 ‘셀프 피팅’

셀프 피팅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건 우드 클럽에서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였던 테일러메이드다. 1979년 메탈 드라이버를 내놓으며 사실상 ‘우드’의 개념을 바꿨던 테일러메이드는 2004년에는 무게중심을 이동시킨다는, 당시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발상이 구현된 게 R7 드라이버다. 탈부착이 가능한 4개의 웨이트 카트리지를 이용해 탄도와 구질의 조정을 가능하게 했다.

테일러메이드가 쏘아올린 웨이트 이동 기술(Moveable Weight Technology)은 캘러웨이, 타이틀리스트, 핑 등 모든 골프 브랜드로 확산했다. 이후의 상황은 마치 집단지성의 힘처럼 전개됐다. 조절 가능한 호젤까지 등장하면서 페이스각과 라이각도 변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셀프 피팅 드라이버의 초기 조합은 6가지에 불과했지만, 이후에는 수천 가지 조합으로 늘었다. 드로와 페이드의 좌우 구질 편차가 100야드를 넘기는 제품도 나왔다. 웨이트를 이동시키는 방식은 고정식에서 슬라이딩 방식으로 진화했다. 여기에 좌우와 앞뒤로 무게추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T 트랙이나 이를 변형한 Y 트랙 버전도 선보였다.



셀프 피팅 기능이 처음 적용된 R7(왼쪽부터), 카본 사용이 확대되고 더욱 진화한 Qi10, T 트랙 시스템을 갖췄던 M1 드라이버. 사진 제공=테일러메이드


가볍고 강하게…소재 변화와 결합한 진화

셀프 피팅 개념이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지금은 드라이버와 페어웨이우드 외에도 퍼터의 무게중심 위치까지 바꾸는 시대다. 그 사이 셀프 피팅은 소재의 변화와 맞물려 더욱 정밀해졌다.

소재가 중요한 이유는 무게중심의 위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느냐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kg의 무거운 쇠망치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300g의 장난감 망치가 있다고 치자. 이제 30g의 너트를 두 개의 망치 한쪽 끝에 붙인다. 두 망치를 사용할 때 무게감에는 어떤 차이가 생길까.

무거운 쇠망치는 30g의 너트를 붙이기 전이나 후의 무게감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반면 플라스틱 장난감 망치는 너트를 부착한 이후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걸 더 확실히 느껴질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30g의 너트는 쇠망치 무게에 비하면 1%에 불과하지만 플라스틱 망치에는 그 10배인 10%의 무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동일한 너트인데 대상의 소재와 무게에 따라 영향을 주는 효과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카본 소재 사용의 확대는 셀프 피팅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했다. 카본은 티타늄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강해 현재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22년 테일러메이드는 스텔스 드라이버를 출시하면서 ‘카본 우드’의 시대를 알렸고 이 역시 드라이버 시장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분석기기의 발달, 셀프 피팅의 활성화에 기여

무게 이동 기술이 처음 나온 이후 얼마 동안은 골퍼들의 셀프 튜닝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크게 변화한 분위기다. 샷 분석기기의 발달과 더불어 클럽과 스윙에 대한 일반 골퍼들의 이해 수준이 향상되고 있어서다. 셀프 피팅 방식도 누구나 직관적이고 쉽게 세팅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다.

2025년에도 브랜드들이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테일러메이드는 Qi35, 핑은 G440, 캘러웨이는 엘리트(Elyte), 스릭슨은 ZXi 등의 드라이버를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 업체가 신제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식 출시 전까지 숨기고 있지만 일부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무게 이동 기술과 카본의 결합은 더욱 강해진 양상이다. 셀프 피팅에 대한 소비자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는 의미다. 렌치를 몇 번 돌리는 것만으로도 타수를 줄일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피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테일러메이드의 Qi35 이름을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F-35가 오버랩됐다. F-35는 미국의 5세대 스텔스 다목적 전투기로 미국 공군, 해군, 해병대의 요구조건에 부합되도록 설계됐다. 스텔스 기능이 있으며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고 수직이착륙이 가능하다. 혹시 Qi35도 그런 다재다능한 기능을 품고 있어 그런 이름을 지은 건 아닐까라는 근거 없는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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