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분야에서의 기술력은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의 제재가 강화될 경우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앞다퉈 독자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중국 내 영향력도 상당하다. 올해 첫 전기차를 출시한 샤오미의 수치(SU7), 지리자동차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의 믹스 등에는 엔비디아의 자율주행용 반도체 ‘오린’이 사용됐다. 오린의 중국 내 점유율은 9월 현재 37.8%에 달한다. 문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수출통제가 심해질 경우 엔비디아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막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중국 업체들이 칩 내재화에 공을 들이는 배경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는 올해 초 왕촨푸 회장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1000억 위안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을 반도체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비야디는 프리미엄 브랜드 팡청바오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오파드8에 자체 개발한 ‘BYD 9000 스마트 콕핏 칩’을 장착했다.
전기차 스타트업 니오는 올 7월 5㎚(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의 자율주행용 칩 NX9031을 개발했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니오의 창업자인 리빈 최고경영자(CEO)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에 테이프아웃(반도체 설계도를 전송)했다”며 테스트 작업을 거쳐 내년 1분기 양산해 플래그십 세단 ET9에 장착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샤오펑과 리오토 역시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내년 출시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화웨이 또한 자동차 회사들과 협력해 전기차를 만들면서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통해 자율주행 기능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전략이다. 앞서 화웨이는 올 4월 스마트 드라이빙 시스템 브랜드 ‘첸쿤’을 선보였다. 운전 섀시와 오디오, 운전석을 통합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화웨이가 협업 중인 자동차에 첸쿤을 적용하고 있다. 화웨이의 ‘첸쿤 ADS 3.0’은 레오파드8에 비야디 모델 중 처음으로 장착됐는데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 후 원격으로 주차하는 첨단 기능 등이 도입됐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언제라도 제재를 강화해 엔비디아 칩의 중국 판매를 금지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오히려 중국 자동차 업체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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