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인 25일(현지 시간) 발생해 최소 38명의 사상자를 낸 아제르바이잔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러시아 미사일 때문이라는 예비 조사 결과가 26일 나왔다. 같은 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발트해 해저 전력케이블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훼손된 사건의 배후로도 러시아가 지목되고 있다. 러시아와 유럽의 갈등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넘어 확전하는 양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추락한 자국 여객기가 러시아 대공미사일 또는 그 파편에 맞았다는 결론의 예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추락 여객기는 전날 67명을 태우고 아제르바이잔 바쿠를 출발해 러시아 연방 체첸의 그로즈니로 향했다. 그러나 여객기는 도중 항로를 변경했고 카스피해 동쪽으로 건너가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에서 비상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 WSJ는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여객기를 자국 영공에서 우회시키고 위성항법장치(GPS)를 교란시킨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미사일에 의한 격추설은 사고 초기부터 제기돼왔다. 여객기가 지나던 러시아 북캅카스 상공이 최근 몇 주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됐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날 밤까지 우크라이나 드론 59대를 격추했다고 밝혔고 여객기 추락 3시간 전에도 드론 1대를 격추했다. 미국 당국자는 당시 그로즈니에서 러시아 방공망이 작동 중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여객기가 러시아 대공 시스템에 격추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군사·항공 전문가들 역시 여객기 꼬리 부분에 미사일에 맞은 듯한 작은 구멍이 가득한 점을 들어 “어떠한 종류의 대공포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다만 러시아 당국과 추락 장소인 카자흐스탄 정부는 여전히 격추설을 부인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추락 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이며 결론이 나오기 전에 가설을 세우는 것은 잘못”이라고 경고했다.
25일 발생한 발트해 해저케이블 손상 사고 역시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됐다. 이날 핀란드 국경경비대는 자국과 에스토니아를 잇는 에스트링크2 전력케이블을 손상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이글S’호를 나포해 호송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무연휘발유 3만 5000톤을 싣고 이동하던 해당 선박이 사고 당시 해저케이블 위를 지나고 있었으며 근처에서 속도를 급격히 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쿡제도에 등록됐고 두바이 선주가 소유한 이 선박이 러시아가 석유 수출에 대한 국제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용하는 일명 ‘그림자 함대’에 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당국은 해저케이블이 단순 오작동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이번 사고가 러시아 그림자 함대의 사보타주(파괴공작)일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마르구스 차크나 에스토니아 외무장관은 “해저 인프라에 대한 손상이 너무 빈번해 우연일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 고의적인 손상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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