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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까지 안전구역 연장 안해…"콘크리트 둔덕 규정 위반" [제주항공 무안 참사]

[드러나는 인재 정황]

국토부 "문제 없다" 주장했지만

설계지침엔 '돌출금지'도 명문화

美 연방항공청 등 기준은 더 깐깐

전문가 "국제 권고치 준수 바람직"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관계자들을 비롯한 한미 합동조사단이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79명의 사망자를 낸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 사고의 피해를 키운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이 공항 설치 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무안국제공항의 로컬라이저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설계 지침에는 ‘장애물까지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종단안전구역 경계 외부까지 평탄면을 확장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우리나라보다 강화된 조건이 명시돼 있다.



31일 국토부는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규정에 맞지 않게 설치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도 참고 자료를 통해 반박했다. 무안공항의 종단안전구역은 199m인데 규정은 최소 90m, 권고 240m로 돼 있어 문제가 없고 로컬라이저도 외부 구역에 있다는 것이다. 공항 활주로는 항공기가 이탈할 것을 고려해 활주로 끝에서 60m의 착륙대를, 착륙대 끝부터 최소 90m의 종단안전구역을 확보하도록 돼 있는데 무안공항의 착륙대와 종단안전구역은 이 기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콘크리트 받침대와 둔덕형으로 이뤄진 로컬라이저는 이 구역(종단 안전 구역)에서 5m 뒤에 설치돼 있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국토부가 발표한 ‘공항·비행장시설 설계 세부지침 18조 2항의 3’에 따르면 종단안전구역은 첫 번째 장애물이 있는 시설까지 연장해야 한다. 지침은 ‘정밀접근 활주로에서는 계기착륙장치(ILS)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통상 첫 번째 장애물이 되며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장애물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로컬라이저까지 종단안전구역이 연장돼야 하는 규정이 있는 가운데 18조 6항에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은 어떤 부분도 진입표면 위로 돌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국토부가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부분을 ‘둔덕’이라고 표현한 만큼 국토부의 해명에 의혹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설치 물체와 관련해서도 ‘부서지기 쉽게 설계 및 설치되며, 항공기에 대한 위험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국내 논문에서도 로컬라이저의 위치 선정에 대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2015년 ‘로컬라이저의 최적위치 선정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조환기 충북 드론·UAM 연구센터장은 “로컬라이저는 항공기가 이륙 및 착륙하는 동안 엔진의 배기가스로 인해 구조적인 손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안전거리를 둬 약 300m 지점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로컬라이저는 활주로와 같은 높이에 설치되고 만약의 경우에 쉽게 쓰러지도록 만들어져야 하며, 지지대인 콘크리트가 둔덕 형태가 아니라 얇게 있었어도 이처럼 큰 사고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Annex 14와 Doc 9175(공항설계교범)에 따라 최소 종단안전구역의 길이를 최소 90m, 권고 240m로 운영하고 있지만 미국의 종단안전구역의 설치 기준은 1000피트(약 300m)로 보다 까다로운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에서 2022년 개정판으로 발간한 공항설계지침은 ‘로컬라이저를 안전구역(RSA) 내부에 배치하지 않도록 RSA 경계 외부까지 평탄한 면적을 확장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위험할 수 있는 홈·융기·함몰, 또는 기타 표면 변형이 없도록 해야 하고, 높이 3인치(76㎜) 이상의 물체는 없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미국은 자국 내 해당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공항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국내 규정을 준수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충분히 안전한 거리가 있었느냐의 문제”라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권고치를 준수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위각 시설의 재질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며 “높이를 올려야 하더라도 잘 부러지는 시설로 구축하도록 명확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국토부는 사고 조사 결과 현행 기준이 공항 안전을 확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은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단계”라면서도 “사고 조사 과정에서 현행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 (규정 개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로컬라이저 설치 이외에도 참사의 인재(人災)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사고 기체인 HL8088은 사고 전날인 28일 4개 국가의 도시를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착륙 한 시간 만에 다시 이륙을 할 동안 정비 의무 시간인 28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한 여객 운항 시간도 도마에 올랐다. 제주항공의 여객기당 월평균 운항 시간은 418시간으로 국내 LCC 중 유일하게 400시간을 넘겼다.

무안공항도 이번 참사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안공항의 비행기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은 0.09%로, 전국 14개 지방공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항공 업계에 따르면 사고 당시 근무한 조류퇴치반 인원은 1명에 불과했고 조류 충돌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조류 퇴치 인력도 4명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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