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내년도 방위비가 80조 원이 넘어갈 전망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NHK방송·아사히신문은 26일 일본 정부는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위해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방위예산안이 8조 6700억 엔(약 81조 2100억 원) 수준으로 증가하는 편성안을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2024회계연도 보다 7500억 엔(약 7조 87억 원) 가량 늘어난 금액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 편성이 확정되면 사상 처음으로 연간 8조 엔을 넘어서게 된다.
일본 정부는 2022년 12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하면서 2027회계연도에 방위 관련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는 방침을 세웠다. 향후 5년 간 방위비로 약 43조 엔을 확보하겠다고 예고하고 매년 꾸준히 방위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도는 3년차에 해당된다.
일본 정부는 2025회계연도 전체 예산안을 2024회계연도 예산보다 3조 엔(약 28조 350억 원)가량 많은 115조 5400억 엔(약 1079조 7200억 원)을 편성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3회계연도 예산인 114조 3000억 엔(약 1068조 1300억 원)을 웃도는 역대 최대 규모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의 일반회계 총액이 3년 연속 110조 엔을 넘는 것은 물론 내년도 방위 관련 예산은 전년도 보다 약 9% 가량 늘어나며 11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게 됐다.
육·해·공 각 자위대의 반격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정비에 필요한 장비 취득 경비와 자위관 처우 개선비 등을 골자로 한 방위예산안의 대폭 증액이 예산 규모 급증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아사히신문은 분석했다.
눈에 띄는 일본의 2025년도 방위예산안에는 반격 능력 정비의 일환으로 다수의 소형 위성으로 목표를 탐지·추적하는 ‘위성 콘스텔레이션(무리)’을 구축하기 위해 2832억 엔이 편성됐다. 위성 콘스텔레이션은 50여 기의 소형 인공위성 쏘아올려 지구 저궤도에서 특정 국가의 미사일 원점 등을 감시하는 체계다. 극초음속 미사일 등의 적 표적 탐지·추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또 적의 사정권 밖에서 대처하는 스탠드오프(원거리 타격) 방위능력 강화를 위해 함정 발사형인 ‘12식 지대함 유도탄 능력 향상형’ 취득에도 168억 엔을 새롭게 편성했다. 잠수함에 탑재 가능한 수직유도탄발사시스템(VLS) 연구비로 297억엔 을 투입해 발사 플랫폼의 다양화를 추진한다.
또 군 부대의 통신 수요 증대를 감안해 차기 방위 통신위성의 정비를 지원하고자 1238억엔을 확보했다. 무인 장비 도입도 추진한다. 해상에서의 정보 수집·경계 감시를 강화하는 정찰용 무인기 ‘시가디언’ 2대 취득 관련 비용으로 415억 엔을 책정했다.
영국·이탈리아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차기 전투기 개발 비용으로는 1087억 엔을 편성해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영·이 3국 정부 간 기관 ‘GIGO(자이고)’ 사업에도 투입한다. 육·해·공 각 자위대의 정보 공유 강화를 목적으로 시스템을 일원화하는 ‘방위성 클라우드’ 정비 예산 970억 엔도 내년도 방위 관련 예산안에 포함됐다
특히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관심 갖고 있는 자위관 (병력)확보를 위해 수당 신설 등 처우 개선에 167억 엔을 지원하고, 생활·근무 환경 개선에는 3878억 엔을 투입해 등 인력난 해소에 총 4097억 엔을 편성했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후 첫 소신표명 연설에서 “방위력의 최대 기반은 자위관”이라며 처우 개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가 움직임에 미국은 환영 의사를 내비쳤다. 미국 국무부는 27일(현지 시간)“미국은 일본이 방위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늘리는 등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일본이 내년도 방위비를 올해 대비 9.4% 늘어난 약 550억 달러 규모로 증가한 것과 관련해 “수십 년 동안 미일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의 초석 역할을 해왔다”며 이같이 답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이어 일본의 방위력 강화 조치는 “우리의 방위 관계를 격상시키면서 미일 안보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동맹을 강화해 인도태평양의 안정에 기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내년도 일본 방위예산안에 적의 타격 범위 밖에서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스탠드오프 미사일 대량 생산 비용이 포함된 것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과 미국 정부 간의 물밑 조율에 의해 후속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뿐만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전쟁’ 탓에 전 세계의 글로벌 군비 경쟁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동맹에 더 큰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에 발맞춰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연합(EU) 회원국, 중동, 대만 등이 앞다퉈 국방 예산을 늘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 12월 1일(현지 시간) 공표한 예산안에 따르면 2025년도 러시아 국방예산은 총 13조 5000억 루블(약 176조 400억 원)로 전년 대비 약 30% 급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도 28.3%에서 32.5%로 크게 상승했다.
러시아 위협 높아져 EU도 방위대 확대
러시아의 위협과 군비 확충이 본격화하자 유럽(EU) 국가도 무장 강화를 위한 방위비 확대에 나섰다. 폴란드는 내년 국방예산으로 올해보다 17.3% 증가한 487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네덜란드와 핀란드도 국방비를 각각 10%, 12% 확대했다. 프랑스 역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긴축예산 편성에도 국방 지출은 7% 증액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2년째 접어들고 중동지역 전선이 확장되면서 중동 국가들도 서둘러 군비를 확대하고 있다. 이란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내년도 국방 예산을 올해 103억 달러(약 15조 1700억 원)에서 200% 증액하는 편성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과 10월 이스라엘의 두 차례 이란 공습이 이란의 국방비 증가를 자극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휴전 협정을 맺은 이스라엘도 방위비를 늘리고 있다.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2025년 국방 예산을 올해 275억 달러에서 최대 401억 달러(약 59조 670억 원)로 약 46%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일 대만 포위 군사훈련 등을 하며 대만 침공을 예고하는 중국에 대응하고자 대만 또한 내년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7.7% 늘어난 6470억 대만달러(약 29조820억 원)로 편성했다. 대만 경제성장률(3.26%)의 두 배 규모다.
전문가들은 지정학 갈등이 고조되면서 러시아와 EU, 중동, 동북아시아 국가가 국방력 강화에 나설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월 대선 유세 중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인 NATO 방위비 분담금 목표를 3%로 올리겠다는 군비 증가 기조를 밝힌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한국을 비롯해 NATO 회원국과 일본, 대만 등의 방위비 증가는 ‘트럼프 2.0’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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