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항공기의 활주로 이탈 사고가 발생해 179명이 숨진 가운데,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콘크리트 둔덕 위에 위치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가 꼽히고 있다. 항공기가 동체 착륙하면서 활주로를 이탈한 끝에 단단한 콘크리트에 부딪치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무안공항의 활주로 이탈 피해 범위를 줄이기 위해 설치하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unway End Safety Area·RESA)도 국제 권고 기준인 240m보다 짧은 가운데, 일본은 일찍이 종단안전구역 확보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 3월 일본 국토교통성 항공국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ESA) 대책에 대한 지침’을 발간했다. 같은 해 4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최소 기준에 맞춰 공항시설 설치 기준을 개정하면서 2026년까지 모든 공항에서 종단안전구역을 최소 90m 이상으로 확보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기준 일본 내 공항 97곳(44%)가 90m 미만으로 집계돼 일본 정부는 순차적으로 종단안전구역 용지 확보를 위한 개선책 마련을 진행해왔다.
눈에 띄는 점은 지침 내 ‘항공기 이탈 방지 시스템(EMAS) 도입’에 대한 논의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국토교통성은 EMAS에 대해 “활주로의 길이를 변경하지 않아 공항의 능력을 저하시키지 않고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2개사가 생산 중인 EMAS 종류·재질 등을 상세히 분석했다. 이외에는 공항 외 부지를 확보해 종단안전구역을 확장하는 방법, 종단안전구역 반대편에 활주로를 이설하는 방법, 로컬라이저 용지를 활용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다만 로컬라이저 용지를 활용할 때에는 “활주로 사용 비율이나 진입 방식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ICAO·FAA 등 국제 기준도 EMAS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종단안전구역을 줄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6년 10월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탄 항공기도 뉴욕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폭우로 인해 활주로 이탈이 벌어졌지만 EMAS로 인해 종단구역 밖 잔디밭에서 사상자 없이 안전하게 멈출 수 있었다.
실제로 3년 뒤인 2020년에는 일본 최초로 도쿄 하네다 공항에 폭 84.5m·길이 62.8m의 EMAS를 설치했다. 공항 밖 신규 부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고 산지·해안가 등 지형상 이유로 종단안전구역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 EMAS의 유용성이 급부상하기 때문이다. 기존 하네다공항 A활주로는 종단안전구역 길이가 40m에 불과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종단안전구역과 EMAS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의 용역으로 2016년 발간된 ‘김포·울산공항 개발기본계획 수립 연구’에 유일하게 울산공항 18방향 종단안전부지에 EMAS를 설치하는 방안이 언급됐지만 “향후 국내외 기준이 정립되는 시기에 설치 여부 필요성을 재검토”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에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착륙대 종단에 제동시스템을 설치하는 경우,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의 길이를 줄일 수 있다”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예산과 지형상의 문제 등으로 종단안전구역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는 EMAS를 본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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