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죽은 듯 잠자거나 어둠에 쌓인 것처럼 조용히 있어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 시간을 버텨야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옵니다.”
소설 ‘어둠 뚫기’로 제 30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박선우 소설가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가고 순환하는 견딤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며 어둠 뚫기를 쓰게 된 배경을 밝혔다.
제목 자체에서는 적극적인 행동성을 느낄 수 있지만 그의 어둠 뚫기는 실제로는 기다림과 견뎌냄에 가깝다는 것. 그는 “비관적이거나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생의 리듬이나 활력을 가져다주는 게 극 중 어머니로 등장한다”며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하다가 2018년 등단 후 여전히 편집자와 소설가의 삶을 겸하고 있는 그는 지난 2년이 큰 변화의 시기였다. 몸이 크게 아팠고 자연스레 글을 쓰는 방식도 바뀌었다. 박선우는 “내면을 세심하게 파고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는데 몸이 아프다보니 섬세하게 감정적으로 파고드는 게 쉽지 않아졌다”며 “1년 반 넘게 쓰던 소설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헤매는 과정에서 어둠뚫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소설에서 성소수자인 아들인 ‘나’는 단순하고 평범해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나’는 거의 매일 어머니에게 ‘벽’ 같은 감정을 느낀다. 어머니를 사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는커녕 매일 같이 틀리게 말하는 예능프로그램명이 거슬리고 같이 영화를 보자고 골랐다가도 보고 났더니 떨떠름해 해서 끊임 없이 모르는 타자가 출몰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서는 장롱 위에 쌓아둔 교자상을 꺼내지 못하는 엄마가, 은행 앱 사용을 겁내 매번 고추가루 대금이나 참기름값 송금을 부탁하는 엄마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변경할 줄 모르는 엄마가 마음에 걸려 독립을 미룬다. ‘나무가 이파리를 포기하는 시점'이 언제일지 궁금해 하지만 둘은 계속 한 집 에서 ‘공생’한다.
소설에서 엄마의 내면이나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따로 없다. 그는 “정작 가족인 엄마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했다”며 “엄마가 가지고 성향의 개연성이나 사연을 넣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이랬구나’ 하는 판단이 들어갈 여지를 최대한 빼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과 계속 살 수 있나’ 그가 첫 장편소설을 통해 계속 던진 질문이었다. 박선우는 “소설 속에서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의 관계를 압축해 다루고 있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다”며 “이해가 안 되는 존재나 사건을 맞닥뜨리고 상처도 입지만 받아들이면서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1년 넘는 과정을 거쳐 첫 장편 소설을 끝냈지만 오랫동안 이 원고를 내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통상 청탁을 받고 시작해 2~3개월 가량 쓰고 넘기는 단편 소설과 달리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오랫동안 소설을 쓰면서 어떤 임계점을 넘었다. 그는 “초반부는 고통스러운데 어느 정도 얼개가 잡히고 나면 ‘러너스 하이’처럼 재밌어서 글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아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구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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