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챔피언, 세계의 챔피언.”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 기업 비야디(BYD)는 2일(현지 시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렇게 자축했다. 전날 비야디는 지난해 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427만 대 넘게 팔았다고 발표했다. 목표인 360만 대를 크게 웃도는 역대 최다 기록으로, 미국 포드 자동차와 일본 혼다 자동차에 근접한 규모다.
하루 뒤 실적을 발표한 미국 테슬라와는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이날 테슬라는 지난해 전기차 178만 9226대를 판매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전년보다 1만 9355대 줄어든 수치다. 테슬라의 연간 판매량이 감소한 것은 테슬라가 판매 실적을 공개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전기차 시장 극초기였던 2010년 1500대, 2011년 650대를 팔며 판매 대수가 뒷걸음질 친 적은 있지만 그때와 지금 테슬라가 처한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지속되고 있고 중국 업체들의 추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비야디의 지난해 배터리 전기차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2.08% 늘어난 176만 4992대로 성장률은 전년(72.8%)보다 크게 둔화했지만 테슬라와의 격차를 21만 대에서 3만 대로 좁히는 데는 성공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테슬라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불과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 때만 해도 테슬라는 “2024년 차량 판매량이 소폭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경쟁 업체들이 유럽에서 시장점유율을 예상보다 빠르게 늘리면서 4분기 테슬라의 유럽 판매량이 대폭 감소했다. 이로 인해 4분기 실적(49만 5570대)은 시장 예상치(팩트셋 기준 49만 8000대)를 밑돌았고 전체 판매량을 끌어내렸다. 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ACEA)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테슬라는 유럽에서 전년 동기 대비 14% 줄어든 28만 30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캐즘에 갇힌 유럽·북미 등과 달리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테슬라는 현지 업체들에 밀리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자동차 산업 데이터 분석 회사 오토포캐스트솔루션 부사장인 샘 피오라니는 “모델Y가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모델이지만 판매량이 시장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 11월까지 모델Y의 판매량이 약 5% 늘어난 데 비해 중국 내 전체 전기차 판매량은 8% 증가했다”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성능을 대폭 개선한 데다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애국 소비’ 덕에 전기차 수요를 대부분 흡수하며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비야디뿐만 아니라 리오토(50만 대), 스텔란티스가 지원하는 립모터(29만 대), 샤오미(13만 5000대)도 지난해 중국 내수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올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처음으로 내연기관차를 앞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승용차협회(CPCA)는 지난해 1~11월 중국의 신에너지차량(NEV) 판매가 전 세계 총판매량의 7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추이동수 CPCA 사무총장은 “2021년 52%, 2022년 63%, 2023년 64%에 이어 지난해 첫 11개월 69.6%로 가속화와 확장의 뚜렷한 추세를 보여줬다”며 “중국의 (신에너지차량 판매) 성장률은 전 세계 평균 성장률을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탄탄한 중국 내수를 등에 업은 비야디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테슬라는 당분간 험로가 예상된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차량 판매가 올해는 20~30% 증가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으나 북미 및 유럽 시장의 캐즘이 지속되고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이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전기차 세액공제를 폐지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테슬라에는 단기적으로 악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머스크가 차기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취임해 자율주행 등 관련 규제를 없앤다면 테슬라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 테슬라는 2027년 초부터 자율주행 택시 생산을 시작할 계획인데 정부의 전기차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이 모델의 가격은 3만 달러 안팎으로 중국산 저가 전기차 공세에 대응할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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