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의 상징적인 존재다. 1998년 US여자오픈 때 그의 ‘맨발의 샷’은 ‘세리 키즈’를 탄생 시킨 뿌리가 됐다. 1977년생 박세리의 역사적인 장면을 보고 꿈을 키운 ‘세리 키즈’ 중 한 명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1988년생 신지애다.
지난해 윤이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롤 모델이 누군지 물어봤다. 주저 없이 윤이나는 “신지애 프로님”이라고 했다.
박세리가 한국 여자골프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면 신지애는 한국 여자골퍼들에게 ‘정신적인 지주’ 같은 존재다. 특히 힘든 시간을 보낸 선수들에게 신지애는 불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규칙 위반으로 출장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던 윤이나가 성공적인 복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신지애의 도움이 컸다. 복귀에 앞서 호주에서 훈련도 같이 했고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줬다. 작년 신지애가 유일하게 출전한 국내 대회가 바로 윤이나의 복귀전이었던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이었다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조언 뿐 아니라 충고도 하면서 살뜰히 챙겼다.
현재 고진영의 멘토 역시 신지애다. 고진영은 여러 인터뷰에서 신지애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 놓고 밝히고 있다. 지난 해 10월에는 고진영이 신지애가 머물고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고진영은 골프와 관련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신지애와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작년 KLPGA 투어 마지막 3승의 주인공인 마다솜도 신지애를 롤 모델로 삼은 것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게 출발한 만큼 나이 들어서도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이란다.
신지애가 프로에 입문한 건 2006년이다. 올해로 정확히 ‘프로 20년차’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65승을 끌어 모은 신지애지만 여전히 배는 고프다. 올해 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일단 JLPGA 투어 2승이다. 영구 시드권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승수다. 일본에서 30승을 거두긴 했지만 2승은 비회원 자격으로 따낸 것이라 충족 조건에서 빠진다. 10월 열리는 일본여자오픈 우승도 목표 중 하나다. 투어 사상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기 위해 남은 마지막 퍼즐이기 때문이다.
신지애는 현재 JLPGA 투어 생애 상금 2위에 올라 있는데, 1위 후도 유리(13억 7262만 엔)와는 60만 엔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올해 시즌이 새로 시작되면 생애 상금 1위 자리는 곧바로 신지애의 몫이 될 것이다.
지금은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신지애도 한때 현재 후배들이 하는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일찍 은퇴하겠다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을 하나둘 해결해 가면서 신지애는 골프란 스포츠를 삶과 연결해 긴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을 갖게 된 듯하다.
많은 골퍼들이 신지애를 따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지혜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넘치기 때문이다. 신지애(申智愛)는 골프의 ‘信·智·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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