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우스트루가 항구의 거대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 러시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이 있는 곳으로 러시아군에 공급하는 연료를 처리하는 운송 요충지다. 우크라이나에서 1500㎞나 떨어진 이곳을 성공적으로 폭격할 수 있었던 것은 전파 방해에 취약한 위성항법장치(GPS) 대신 인공지능(AI)을 드론에 탑재했기 때문이었다. AI가 자체적으로 지형을 탐색하고 자율적으로 경로를 설정해 목표물을 정확히 식별한 후 자폭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 타격에 큰 역할을 한 이 드론이 현대전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드론에 탑재되는 지능형 분석 플랫폼을 만든 곳이 미국의 AI 빅데이터 기업 팰런티어(Palantir)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의 주식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835억 달러(266조 원)로 1년 새 3배나 급등했다. 전통 방산 업체인 록히드마틴(1159억 달러)과 레이시언(155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어 빅테크 방산 공룡으로 부상했다. 전자 결제 서비스 기업 ‘페이팔’을 세운 피터 틸이 페이팔을 팔고 2003년에 팰런티어를 설립했다.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국방부 등의 투자와 수주를 받고 성장했다. 2024년에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나스닥100 지수에도 편입됐다. 사명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천리안 수정 구슬에서 따왔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도 최근 이 주식을 대거 담았다.
중동·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 무인 함정, AI 군사 시스템 등 첨단 무기의 위력이 입증되면서 방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유럽과 중동·대만 등의 방위비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를 제외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무기 제조 능력을 평가받는 한국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기존의 방산 제조 능력에만 안주하면 미국의 전통 방산 업체들처럼 뒤로 밀려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정부와 방산 대기업·스타트업들이 무기 고도화에 도전하고 기술 혁신에 나서야 한국 방위 산업의 지속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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