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현주 역을 맡아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던 중 배우 박성훈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적절한 이미지를 실수로 게재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높은 인기와 관심만큼 따가운 질타의 목소리도 높았다. 널리 알려진 인물에 대한 도적적 기준이 높은 한국 사회의 특징이 맞물리면서 부정적인 여론은 좀처럼 잦아 들지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용기를 낸 박성훈은 8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나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수 차례 사과를 한 후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박성훈은 중간 중간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눈물을 참아내기도 하며 대답을 이어갔다.
글로벌 시청자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소감을 묻자 그는 “작품이 큰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게 기쁘고 감사한데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인기를 실감할 여유가 없다”며 “실수이지만 계속 자책하고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감당하고 감내해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사실 이제 핸드폰을 만지기도 싫다. (인기를)실감하지 못 하고 있다”고 말하며 또 한번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현주 역을 맡았다. 극 중 현주는 성확정 수술을 받기 위해 게임에 참가했다. 실제로 현주는 황 감독이 가장 아끼는 캐릭터이자 가장 사랑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인물이다. 앞선 인터뷰에서 황 감독은 ‘개판 같은 게임 세상’ 안에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상처받았지만 가장 정의롭고 싸움도 잘 하는 현주를 호감도 있는 역할을 만들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황 감독이 작심하고 가장 아름다운 캐릭터로 만든 게 바로 현주다.
실제로 박성훈은 황 감독이 의도했던 가장 소외당하지만 선의와 정의감이 살아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용기를 낼 줄도 아는 현주를 섬세하게 연기했다. 팀에 들어가려고 이리 저리 기웃거리지만 거절 당할 때,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가 팀을 이루려 할 때 망설이고 주춤하고 용기를 내어보는 섬세한 표정과 머뭇거리는 몸짓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여자 연기, 트랜스젠더 연기에 대한 호평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 그가 연기한 언 여자도, 트랜스젠도 아닌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현주를 연기하면서 절대 희화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과도한 음성 변화나 과장된 연기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며 “감독님께서 거기에 너무 동의를 해주셨고 제 목소리가 워낙 저음이다 보니 많이 꾸미면 너무 감정이 진실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 적당한 톤을 감독님과 잡아 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호르몬 치료를 받더라도 목소리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자문을 받은 기억이 있어서 과하지 않게 한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주가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긴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 목소리가 꾸며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 순간들이 꾸밈 없이 나와줘야 진짜처럼 느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더 글로리’에서 출연해 커다란 인기를 얻으며 ‘재준’이로 불렸고 논란이 있기 전까지도 ‘현주’로 불렸던 그다. 배우의 이름이 아닌 역할로 불린다는 것은 배우에게는 더 없는 칭찬이다. 그가 재준이나 현주를 연기하면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섬세하게 캐릭터를 분석하고 쌓아 올려 간 정성과 노력에서 나온 결과라는 생각이다.
망설임, 머뭇거림, 할 말을 고르는 진중함, 용기, 의리, 희망 이 모든 것을 섬세하게 담아내 극찬을 받은 그는 가장 어렵게 찍은 장면으로는 핑크 솔저들과의 전투신을 꼽았다. 그는 “현주는 인류애가 있는 캐릭터인데 총격전이 시작되기 시작하면서 총격전에 합류하게 되고 그 다음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살리기 위해 총을 겨누게 된다”며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엔 거침 없이 제가 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사실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제가 누구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해야 된다는 게 제가 뭐 악역이었으면 상관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때 그 장면을 찍을 때 너무 마음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면서 촬영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눈물의 여왕’ ‘더 글로리’ 등에 출연하며 주로 강렬한 남성 캐릭터를 연기했던 박성훈은 어떻게 ‘오겜2'의 현주 역을 맡았을까? 황 감독이 KBS 드라마 스페셜 ‘희수’에 출연한 그를 보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그는 “저는 게이 역할을 해 본 적이 있고 그런 역할을 보고 연락을 하신 줄 알았다는데 아버지로 나왔던 ‘희수’를 보고 캐스팅하셨다”고 떠올렸다. 그에게 ‘오겜2’와 신기한 인연과 에피소드가 있다고도 털어놓았다. 그는 캐스팅이 되기도 전에 오겜에 출연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는데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부국제에 꼭 배우로 오고싶다고 말했는데 그게 정말 이뤄졌다”며 “이후 어떤 자리에서 꿈, 목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오겜’에 출연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황 감독과 작업을 하면서 놀라고 감탄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고 똑똑하신 분이라는 것을 완전히 느낀 부분이 있었다”며 “현주가 왜 게임을 계속하겠다고 O를 눌렀는지를 금자에게 설명하는 장면에서 굉장히 고급스럽고 디테일한 디렉션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이 부분에서 ‘엄마가 많이 우셨어요’라는 한마디만 넣어주세요라고 했는데 정말 그 대사를 넣고 다니 엄마가 내가 이런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엄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감정이 과하지 않게 올라 왔다”며 “그 바로 다음 테이크에서는 말씀하신 대로 감정이 다 되는 게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디테일한 디렉션, 정말 너무 똑똑하시다”고 감탄을 했다.
박성훈은 최근 재준이, 현주로 불리며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사실 오랜 무명 시절은 보내온 대기만성형 배우다. 전성기 앞에서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신인이나 오랜 무명시절을 보내고 있는 배우들에게는 귀감이 되는 배우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던 경험을 후배들에게 들려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허심탄회하고 진솔한 경험을 털어 놓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는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고통스럽지는 않았다”며 “제가 연극을 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제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 가면서 이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연극만 하면서 살 수 있네, 이제 오디션 안 보고 연극을 할 수 있네 이러면서, 편하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오면서 올라온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을 이뤄내는 기쁨이 있었다”며 “정말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후배들이 저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