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추상화의 역사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작품 속에서 한국 추상화와 맞닿아 있는 지점을 한국 관객들이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툰지 아데니 존스(Tunji Adeniyi-Jones)는 “한국의 역동적인 작품을 보면 나이지리아와 역사적인 연결 고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흥미가 느껴진다”며 첫 번째 한국 개인전을 개최한 소감을 밝혔다.
화이트 큐브 서울은 10일부터 2월 22일까지 뉴욕에서 활동 중인 영국 작가 툰지 아데니-존스의 개인전 ‘무아경’을 개최한다. 영국의 나이지리아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툰지 아데니-존스는 2014년 옥스퍼드대 러스킨 예술대학에서 미술학사 학위를, 예일대에서 회화와 프린트 메이킹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엘리트 코스를 밟을 정도로 초창기 그는 주류 예술 사조를 따르는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거주하는 요루바 민족의 문화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색감의 회화를 제작하고 있다. 작가는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조사하면서 나의 정체성인 나이지리아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요루바 민족의 예술세계에 빠져들었다”며 “요루바 민족은 가족중심적이고 영성적이며 전통을 중시하는데, 그들의 동작, 댄스 퍼포먼스, 음식, 색채가 작품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생생한 원색이 특징이다. 작품 속에는 수많은 잎이 나부끼는데 잎들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몇몇 작품에서는 아프리카 원주민이 연상되는 사람이 잎을 비집고 나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들 역시 어떤 의식을 위해 공연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요루바 민족이 어떤 의식을 치를 때 입는 옷에 이러한 색을 활용한다”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파리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은 강렬한 색감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신작 중에는 사람이 없이 오롯이 이파리만 가득한 대형 작품도 많다. 하지만 사실은 작품 속에는 신체가 있다. 작가는 캔버스에 먼저 사람을 그리고 그 위에 유화 물감으로 채색한 잎을 켜켜이 쌓는다.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색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색을 얹힌 작품에 추가로 소묘를 하기도 한다”며 “어느 정도 완성이 됐다 싶으면 몇 달 정도 내버려 뒀다가 다른 것이 보일 때 또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미 전시된 작품도 사실은 완성작이 아닌 셈이다.
툰지 아데니-존스는 지난해 4월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나이지리아관에서 선보인 ‘천상의 모임’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아프리카인의 주체성과 자율성,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가진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는 신체가 배경에 녹아들었다가 다시 보이기도 하는 등 경계가 흐릿한 작품이 많고, 신체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다”며 “이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관객들도 이 부분에 주목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펄 화이트가 두드러지는 작품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에 맞춰 구상한 신작이다. 그는 “서울을 뒤덮은 흰 안개와 한국 문화에서 하늘과 절제를 상징하는 백색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면서 작가 역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작가는 ‘단색화’와 ‘이불’을 언급하며 “단색화는 색감이 단색이면서 다이나믹한 역동성이 느껴지는데, 단색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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