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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건 한 순간이지만 스코어는 영원하다…파3홀에서 드라이버 치면 뭐 어때 [오태식의 골프이야기]

골프장 파3홀은 연못 같은 함정이 많아 공략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는 파3홀에 들어서면 거의 매 홀 주저 없이 드라이버를 빼든다. 핀까지 거리가 120m를 넘으면 예외 없이 드라이버를 잡는다. 어떤 날은 18개 홀에서 모두 드라이버를 잡을 때도 있다. 그는 ‘파3홀 드라이버 잡는 남자’로 통한다.

당연히 그를 향해 놀리는 말들이 쏟아진다. “남자가 자존심도 없느냐”는 둥, “드라이버를 잡을 거면 치마를 입고 치라”는 둥, “파3홀에서 드라이버를 잡지 못하게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둥 비아냥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드라이버를 빼든다. 드라이버를 잡기 시작하면서 확실한 ‘파3홀의 강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 비아냥에 시샘도 섞여 있다는 걸 그는 잘 안다.

사실 그도 드라이버 잡는 걸 주저할 때가 있었다. 가장 싫은 상황은 뒤 팀이 빨리 쫓아와 티샷 하는 장면을 보고 있을 때다. 앞 팀이 일명 사인(웨이브)을 줄 때도 영 난감하다. 그럴 때면 그 잘 맞던 드라이버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갤러리’가 신경 쓰인 탓이다. 드라이버를 잡고 싶어도 아이언이나 우드를 잡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마음을 비웠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창피한 건 한 순간이지만 스코어는 영원하다’는 자신만의 모토도 만들었다.

‘파3홀 드라이버 잡는 남자’가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스코어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원래 비거리가 나지 않았던 터라 드라이버로 툭 치면 120m, 힘껏 치면 150m가 나가던 그였다. 멀리는 보내지 못하지만 정확도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던 그였다. 운 좋은 날은 4개 홀에서 언더파가 나오기도 한다. 동반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다. 파3홀에서 드라이버를 잡고 핀에 붙인 뒤 버디를 잡는 건 상대의 심장에 치명타를 안긴다.

핀까지 거리가 길거나 그린 앞에 연못 같은 함정이 있는 파3홀에서는 더욱 드라이버 티샷이 진가를 발휘한다. 그런 어려운 홀일수록 상대가 실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파3홀은 프로골퍼도 스코어 내기 쉽지 않은 곳이다. 작년 인기 절정의 KLPGA 투어에서 45명만이 3타 이내 스코어를 냈을 뿐 아니라 평균 타수 1위였던 윤이나도 파3홀 성적은 2.97타에 불과했다.

작년 KLPGA 투어 파3홀에서 3타 이내를 기록한 선수는 45명 밖에 되지 않는다. 평균 타수 1위 윤이나도 2.97타를 기록했다. 사진 제공=KLPGA


언제부터인가 라운드 전 이렇게 으름장을 놓는 동료들이 늘었다. “오늘은 파3홀에서 드라이버 잡기 없기다.”

하지만 스코어가 중요한데 파3홀이라고 드라이버를 잡으면 뭐 어떤가. ‘18홀 18번’ 드라이버 잡는 남자 얘기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단 하나의 클럽으로 모든 샷을 했던 어느 프로골퍼와의 내기 얘기다.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형님들 저도 끼워주세요.”

고향 선후배 사이로 친하게 지내던 그 프로골퍼는 심심했는지, 다른 동반자와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9홀이 끝나자 자신도 끼워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사양했지만 굳이 자신은 웨지 하나만 갖고 티샷과 퍼팅까지 하겠다며 조르는 게 아닌가.

“(클럽 개수)14대 1이라….”

머리 회전을 빨리 했다. 아무리 웨지 샷을 잘한다고 해도 티샷이 120m 정도 밖에 나가지 않을 테고, 그 골프장 그린이 까다로워 웨지로는 퍼팅도 잘하지 못할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 비록 당시 90대 초반을 치는 실력이었지만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이 깨지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첫 티샷부터 상상초월이다. 티를 낮게 꽂고 그 위에 공을 올리더니 골프채 날 부분으로 힘껏 때리는 게 아닌가. 거의 장작을 패는 수준이다.

낮게 깔린 공은 100m 쯤 날아가더니 한참이나 굴러간다. 주말 골퍼들끼리 흔히 하는 말로 ‘시동 끄고’ 80m쯤 굴러간 것 같다. 날아간 거리(캐리)와 굴러간 거리(런)를 합하니 족히 180m를 보낸 것 같다.

예기치 못한 가공스러운 ‘웨지 티샷’에 기가 팍 죽는다. 게다가 한 번도 페어웨이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파4홀에서 ‘2온’을 시키지 못하지만 대부분 두 번째 샷으로 그린 근처 50m 이내로 보낸다. 그리고 붙이면 파, 아니면 보기다. 파5홀도 대부분 네 번째 샷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다. 파3홀에서도 그냥 편안하게 ‘2온 작전’으로 나간다. 웨지 날 퍼팅을 어쩌면 그리도 잘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프로골퍼는 의기양양하게 버디까지 잡고 스코어 카드에 ‘41타’를 적는다.

내 호주머니 속에 있던 돈들이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더니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결정타가 날아온다. “형님들, 딴 돈은 캐디피로 쓸게요.”

웨지 하나만으로 화끈한 ‘골프 쇼’를 펼친 그 프로골퍼는 다름 아닌 메이저대회에서 타이거 우즈가 딱 한 번 역전패를 허용한 바로 그 양용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유리해 보여도 상대를 봐가며 덤비라고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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