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나이도, 끝도 없다’는 것이 한 시골마을에서 증명됐다. 9일 전남 영광군 군서초등학교에선 평균나이 77세 늦깎이 초등학생들의 졸업식이 열렸다. 배움을 놓친 게 평생 한(恨)이었다는 김순덕(81)·이선숙(75)·장화녀(77)·박향임(76) 할머니 4명은 이날 6년간의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이들은 어엿한 학생으로서 졸업식에 참석해 어느 때보다 명랑하게 웃어 보였다. 어린 학생들과 교사, 아들·손자 등 가족의 축하를 받은 할머니들은 평생 꿈꾸었던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쳤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손자뻘 학생들, 아들뻘 교사와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친손자·친어머니처럼 돈독한 관계로 지내며 도움과 배려 속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 중 가장 먼저 군서초등학교에 입학한 김순덕(영광군 군서면 남계리) 할머니는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 김 할머니는 자녀들을 다 키우고나서 배움에 대한 갈망과 아쉬움이 커졌다고 한다. 자녀들은 이런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학교 측에 입학을 문의했고, 학생 수 감소에 걱정하던 학교 측은 신입생의 입학 소식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학생 수가 줄어 고민하는 농촌학교에 할머니 학생들이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김순덕 할머니의 입학 소식을 듣고 또 다른 동네 어르신 다섯명까지 함께 학교 문턱을 넘은 것. 할머니 2명은 건강상 이유로 안타깝게 중도 포기했지만, 김순덕 할머니를 비롯해 4명의 '할매 초등생’들은 6년 과정을 성실히 마쳤다.
김순덕 할머니는 늦게나마 깨우친 배움의 행복을 더 즐기고 싶다며 군남중학교에도 진학하기로 했다. 김순덕 할머니는 "손자 같은 학생들과 선생님이 잘 가르쳐줘 큰 어려움 없이 학교를 마쳤다"며 “아직 다 배우지 못한 게 있다. 중학교 가서 더 공부하고 배워보겠다"고 다짐했다.
김 할머니의 아들 정원식 씨는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졸업식에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우뚝 선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며 "'배움엔 나이가 없다'는 옛 속담을 몸소 실천하며 또 다른 인생을 힘차게 시작할 어머님의 건승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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