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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이스라엘식 창업국가가 경제 살 길, 실패해도 재도전 가능해야”

◆한정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前 중소기업청장)

창업 수요·자금 위축…퇴직연금 벤처 투자 허용 필요

자본 순환 속도가 중요, IPO 및 M&A 문턱 낮출 때

공무원들 규제 해소 주저, 정치 ‘해결사’ 적극 나서야

트럼프 2기 경쟁력 만회 기회, 조선 등 틈새 찾아야

한정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이 1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케어 등에서 혁신 성장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우리나라가 고속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 등의 기업가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자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고 혁신 기업 육성과 신성장 엔진 점화에 나서야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첨단 기술 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할 스타트업·벤처기업의 창업 문턱을 낮추고 신생 기업과 대기업·자본시장 간 기술·투자 순환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소기업청장을 지낸 한정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이스라엘처럼 기술 창업을 활성화하는 ‘창업 국가’야말로 글로벌 경제 패권 전쟁 시대에 우리나라가 살 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혁신 마인드를 지닌 인재들이 사업에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퇴직연금의 벤처기업 투자를 허용하고 신생 기업의 기업공개(IPO) 및 인수합병(M&A) 문턱을 낮춰 투자 자금의 빠른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정국이 혼란스러운데 창업 시장에 영향은 없는가.

△국내 창업 시장은 계엄·탄핵 사태 이전부터 이미 침체 징후를 보였다. 우선 창업 수요가 위축됐다. ‘미국 우선주의’ 대두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 속에 반도체·전기자동차·2차전지 등 주요 산업 분야의 전망이 불확실해진 탓이다. 창업을 독려할 수 있는 투자 자금 공급도 줄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국내 벤처 시장에 연간 12조 원이 공급됐는데 지금은 8조 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국내 벤처기업 수는 2000년 8800개에서 2023년 4만 개 이상으로 증가하다가 지난해 11월 3만 8119개로 줄었다.

△1990년대 후반 시작된 1차 벤처 창업 붐은 기술 혁신과 정책 지원, 자금 공급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을 제정하고 코스닥 시장을 조성했다. 때마침 1990년대 후반 미국발 ‘닷컴’ 열풍이 불면서 기술 창업이 활성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지만 이후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컨버전스 혁명이 일어나 국내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벤처 창업이 늘었다. 여기에 바이오·헬스케어·에너지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 혁신까지 더해져 국내 신생 기업들은 꾸준히 증가했다. 이제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 혁신을 주도하는데 국내 기술 창업 붐으로 이어질지 아직 불확실하다.

-1기 집권 때보다 더 강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달 20일 출범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인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반도체·전기차 산업 분야가 매우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기술 경쟁력을 지키는 것이 대미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측면도 크다. 특히 미국 정부가 방위 산업 관련 예산을 늘릴 것으로 보이고 한국 등과 협력해 조선 산업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와 기후변화·AI 분야에서 기술 주도권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이 같은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에 기회가 있다. 해당 산업의 기술·자본 문턱은 높지만 틈새시장은 있다. 틈새를 파고들어 미국과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 견제에 집중할 것이다. 블랙홀처럼 모든 산업의 주도권을 빨아들이던 중국을 견제해준다면 우리 제조업 기업들도 경쟁력을 만회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전 등의 국제 분쟁을 종식하고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킨다면 그것도 우리 경제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긍정적 기회 요인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술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을 육성하는 것이 미중 경제 패권 전쟁을 헤쳐나가는 길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저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기술 혁신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는지 연구해왔다. 이스라엘의 산업 경쟁력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방위 산업, 메디컬 서비스 산업 등을 제외하면 미약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산업 기반을 본격적으로 닦은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특히 8대 신성장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 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8개 분야는 방위 산업, AI, 사이버보안, 모빌리티, 핀테크(금융·IT 융합), 애그테크(농업·첨단 기술 융합), 기후테크(기후변화 대응 기술), 바이오·헬스케어 기술이다. 이런 전략이 1990년대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을 맞아 성공했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분야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8대 신성장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비결은 무엇인가.

△비결은 강력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한 데 있다. 민관 매칭 방식으로 자본을 대는 요즈마펀드를 조성해 해외 투자자들을 대거 끌어들이는 등 스타트업 창업에 과감하게 자금 지원을 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기술 트렌드를 정교하게 분석한 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관련 기술을 연구개발(R&D)해 매각하는 전략을 펴왔다. 그 결과 인구가 1000만 명도 되지 않는 이스라엘에 무려 500개 넘는 대기업 R&D센터가 설립돼 있다. 스타트업 창업에서부터 대기업에 이르는 첨단 기술의 가치 사슬이 탄탄하게 짜여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기술 창업 환경은 어떤가.

△자본의 순환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한국에서는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이 창업 후 IPO를 하거나 대기업에 M&A되기까지 각각 10년, 7~8년가량 걸리는 게 보통이다.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우리의 절반 정도 시간이면 M&A나 IPO가 이뤄진다. 자본을 회수하는 기간이 이처럼 짧기 때문에 기업 설립과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자금 순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스라엘에 비해 우리의 창업·투자 환경은 어떤가.

△한국도 투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좋은 성과를 내왔는데 최근에는 상장 신청이 저조하다. 창업 수요에 비해 자금 공급이 더 위축됐기 때문이다. 지금 침체된 벤처 붐을 일으키려면 정부가 연기금을 통해 다시 마중물을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퇴직연금이 벤처기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를 풀어줘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퇴직연금의 벤처기업 직접 투자가 제한돼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벤처 투자의 길이 일부 열려 있지만 퇴직연금은 아직 막혀 있다. 손실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벤처 투자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그렇다면 해외 연기금들의 벤처 투자는 어떤가.

△해외 선진 연기금들은 보통 연평균 6~7%대의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는데 그 비결은 벤처기업 투자 부문에서 연 20~30%씩 수익률을 내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연기금의 경우 2023년 6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를 기존의 8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로 확대했다. 우리도 이렇게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벤처기업 투자에 제약을 받는 국내 퇴직연금들의 연 수익률은 보통 3%대에 불과하다. 이러니 가입자들이 “수익률이 은행 예금과 뭐가 다르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벤처 시장에 자본 공급만 확충해주면 우리도 혁신 기술 창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M&A에 대해 과감하게 세제 혜택을 주고 신기술 상용화에 대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신기술을 실증할 수 있도록 일정한 기간·장소·규모 내에서 상품 출시를 임시 허용해주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큰 실효성이 없었다.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아도 특례 기간 3년이 지나면 다시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규제 샌드박스 특례를 받았던 자동차 공유 서비스 ‘타다’도 결국 규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비대면진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역대 정부들이 신기술 규제 혁신을 외쳤지만 매번 가로막혔는데.

△규제 혁신은 결국 이해 단체들의 기득권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온라인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은 기존 법조인들, 타다는 택시조합들, 비대면진료는 의사단체들에 막혔다. 이 세상에 기득권을 포기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당근과 채찍으로 정교하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며 소상공인들을 괴롭히는 잔가시 같은 규제들을 풀어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규제들은 풀어도 화학물질관리법, 중대재해처벌법,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거대 규제가 만들어져 기업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공무원들이 이런 규제 갈등을 조정해줘야 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배임죄 등으로 책임질 것을 우려해 나서길 꺼린다. 정치권이 기득권 조정자로 나서서 불합리한 규제들을 풀어줘야 한다. 하지만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정치가 불안정하고 계엄·탄핵 사태까지 터지니 공무원은 더 몸을 사리는 상황이다. 정치가 어서 안정을 찾고 규제 해결사 역할을 해줘야 한다.

◆He is…

1954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자리를 옮겨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한양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스타트업·벤처기업 육성에 힘썼다. 한국벤처산업연구원장, 코스닥상장심사위원장, 중소기업청장,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 11월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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