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상황은 달라지질 않으니 답답하죠. 사실상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는 물 건너갔고 '집행부 결정만 기다리는 게 맞나' 자꾸만 의구심이 듭니다. "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을 사직한 전공의 A씨는 "복귀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조금만 더 버텨볼까 하루에도 수없이 고민이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오는 15∼17일 전국 221개 수련병원(126개 기관이 통합 모집)별로 레지던트 1년차와 상급연차(2∼4년차) 모집 실시를 앞두고 A씨처럼 복귀 여부를 고민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조짐이다.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의대생들의 집단 사직·휴학이 11개월째 접어든 가운데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지도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계획의 전면 백지화' 요구와 함께 이른바 ‘탕핑’(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의 중국어) 전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2025년도 의대 입시가 사실상 마무리되고 2026년도 정원 확정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가 "(2025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해 동결과 감원을 모두 포함한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자 일부는 동요하는 분위기다.
대전협을 이끄는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사직 전공의 복귀 지원을 이유로 특례조항 신설 등을 요청한 것을 겨냥해 "정부와 여당은 아직까지도 전공의를 한낱 노동력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요구한 것은 그게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계엄 포고령 제5호에서 '전공의 처단'이 언급된 데 대해서도 "권성동 원내대표와 국민의힘의 입장부터 이야기해 보시라"며 "여당이 발 벗고 나서요? 웃기지 마세요. 여당에서 현 의료 사태에 대해 유일하게 목소리 낸 사람은 안철수 의원뿐 아닌가요"라고 적었다. 새해에도 전공의·의대생의 ‘단일대오’가 굳건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물 밑에서는 실익을 고려해 복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또다른 서울 소재 대학병원 사직 전공의 B씨는 "이번 모집에선 정부가 사직 전공의는 1년 이내에 동일 과목·동일 연차로 복귀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만큼 원래 수련 받으려던 병원에 돌아갈 수 있다. 작년 하반기 모집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복귀를 고심하는 친구들이 제법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등 일부 수련병원 사직 전공의들은 복귀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진행된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에서는 전국 181개 수련병원에서 총 3천594명을 모집했지만 314명이 지원해 181명이 최종 선발됐다. 모집 인원 대비 최종 선발 인원은 5%에 그쳤고, 산부인과는 188명 모집에 1명만 선발되는 등 소위 '필수과' 전공의 충원율은 더욱 저조했다.
다만 복귀 규모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난 금요일 사직 전공의들에 수련특례를 적용한다는 발표 이후 전공의 대표와 관련 내용을 논의했고 의국장 회의를 거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사직전공의중 1~2명만 지원 의사가 있고 나머지는 전혀 복귀 의사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전공의들의 요구사안에 대한 답변 없이는 대규모 복귀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전임의를 비롯한 일부 교수들까지 추가 이탈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명 '조용한 사직'이 급증하면서 지역병원의 경우 진료공백이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교수는 "동료 교수들 중 상당수가 격무에 지쳐 사직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 로컬(지역 병의원)에서 봉직의를 하시겠다는 분도 있고 지역 병원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는 분들도 많다"며 "대구 시내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정부는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구조를 전환한다지만 당장 전문의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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