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불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상 정보 업체 아큐웨더가 집계한 경제적 피해 규모는 최대 2750억 달러(약 40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서울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에 달하는 155.4㎢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곳곳에 불기둥이 치솟고 연기로 자욱한 도시는 폐허가 돼버린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복구에는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마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화재도 기후위기가 불러온 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초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극심한 가뭄과 강한 바람 등 기후변화가 더 큰 피해를 초래한 것은 자명하다. 이미 캘리포니아주는 대형 보험사들이 영업을 포기할 정도로 높은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일부 보험사들은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 가격 조정(repricing of risk)’ 명목으로 최대 300%대로 인상된 보험료를 제시해 가입자들이 보험 연장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복귀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기후위기는 사기”라고 강조한 트럼프가 취임 직후 화석연료 산업 지원을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의 즉각 탈퇴를 준비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트럼프는 화석연료를 장려하고 미국의 기후 약속을 후퇴시킬 것이며, 데이터센터와 가상자산의 새로운 에너지 수요는 그 피해를 증가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 역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폭염·혹한·폭설·폭우 등 기후변화로 농작물 생산량이 줄면서 물가가 치솟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 전 대파 값이 35%나 치솟고 올해 설 명절을 앞두고 배 가격이 70%나 급등한 것도 기후위기의 영향이다. 이상기온에 따른 작황 불안이 이어지면서 식료품 물가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부디 차기 정부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빚어진 ‘대파 값 논란’ 같은 사태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정쟁화하기에는 온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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