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를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이 무역 코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스페인에서 핵무기 제조용 장비를 들여온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미국 싱크탱크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여러 국가를 거쳐 북한에 반입된 진공로:HS 코드 사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께 스페인에서 선적된 ‘겸용 진공 전기로(진공로)’는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 진공로는 핵무기 제조를 위해 금속 우라늄을 녹이는(용융) 작업에 이용된다. 이 때문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 장비의 북한 수출을 금지했는데 제재가 무력화한 셈이다.
이 진공로의 최초 공급자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스페인 무역업자의 선적 때부터 존재가 확인된다. 이때 수출입에 사용되는 ‘HS 코드’는 문제가 없었다. 진공로는 멕시코로 간 뒤 다시 남아공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역 서류의 HS 코드와 설명이 단순 ‘기계류’로 바뀐다. 멕시코 내 수령자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진공로의 HS 코드와 설명은 관세가 면제되는 ‘금속 폐기물’로 다시 한 번 둔갑해 중국에 수출됐고 이후 북한으로 건너갔다. 보고서는 멕시코나 남아공의 수출입 데이터 전산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HS 코드 위조가 이뤄졌고 바로 파악도 못했다는 것이다.
ISIS 창립자이자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미국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에 북한이 제재를 피해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장비를 구하는 데 엄청난 자원을 투입해 계획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멕시코와 남아공은 서방 측 정보기관들로부터 제때 제보를 받지 못해 진공로가 중국으로 선적되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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