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9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측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각기 공격·방어진을 구축해 총력전에 나섰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에 직접 출석해 45분간 계엄의 정당성을 밝히는 등 배수진을 쳤으나 결국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되는 처지에 놓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47일 만에 현직 대통령에서 수인 번호로 불리는 구속 피의자로 전락했다.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에 대한 영장 실질 심사를 거쳐 19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게 발부 사유다. 현직 대통령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전직까지 포함하면 윤 대통령이 다섯 번째다.
윤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영장 실질 심사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 포고령 발령 △국회 봉쇄 △비상계엄 해제 의결 방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구금 등의 후속 조치를 한 게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한 폭동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있는지, 또 공수처가 내란죄 수사 권한이 있는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관할 위반인지도 양측이 첨예하게 충돌할 지점으로 꼽혔다.
윤 대통령 측은 검찰 특수·강력통 출신인 김홍일·윤갑근·송해은 변호사는 물론 석동현·배진한·차기환·김계리·이동찬 변호사 등 8명이 출석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영장 실질 심사에 출석해 두 차례에 걸쳐 각각 40분과 5분 동안 본인 입장을 설명하는 등 직접 변호에 나섰다. 윤 대통령 변호인 측은 이날 구속 심사에서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고유한 통치행위이며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행사를 내란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공수처가 주장하는 혐의 내용이 소명되지 않았고 법리에도 어긋난다는 취지로 변론을 펼쳤다. 공수처가 재범 위험 등을 근거로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한 데 대해서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이 있자마자 군을 철수시켰다”며 2·3차 계엄 시도 자체가 없다고 강조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오히려 윤 대통령이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해 국회를 봉쇄하고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했으며 주요 인사 체포조 운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 및 서버 반출 시도 등에서 내란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는 공수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공수처가 제출한 수사 자료, 증거 등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적용된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 행사 방해 혐의가 소명됐다고 본 것이다. 이미 구속 기소된 군 사령관들의 경우 윤 대통령으로부터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전후해 휴대폰을 교체하고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을 탈퇴한 점에서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 혐의가 중범죄인 데다 윤 대통령 지시로 비상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10명이 모두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는 점도 법원의 발부 판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형법 제87조(내란)에 따르면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폭동을 일으킨 자는 △우두머리 △모의·참여·지휘 △부화수행(다른 사람 주장에 따라 행동) 및 단순 가담 등으로 나눠 처벌한다. 내란 우두머리의 경우 최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이, 모의·참여·지휘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될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겨냥한 검찰·경찰·공수처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김 전 장관을 비롯해 당시 비상계엄에 관여했던 육군참모총장 등 군 주요 장성, 조치호 경찰청장 등 주요 피의자 10명이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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