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외 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해를 맞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주요 우방국에 연하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베트남과 몽골,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인도네시아, 벨라루스 등 국가 지도자들도 수신자 명단에 올랐지만 1년 전과 달리 유독 한 나라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쿠바다.
쿠바는 북한의 오랜 형제국이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는 독립 후 곧장 미국의 실질적 지배를 받았다. 그러던 중 1959년 피델 카스트로 혁명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며 북한과 국교를 맺었다. 쿠바는 혁명 이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한국을 국가로 승인하고 6·25 전쟁 때 한국에 긴급 원조를 할 정도로 우호적이었지만 북한과 형제 관계를 시작한 이래 한국과는 거리도 멀고 사이도 먼 나라가 됐다.
이런 쿠바 수도 아바나 미라마르 지역에 이달 17일 한국 대사관이 처음 문을 열었다. 지난해 2월 수교 이후 11개월만이다. 쿠바 주요 인사들이 새해 북한의 연하장 명단에서 빠진 데는 한국과의 수교에 대한 불편한 감정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수교 발표가 이뤄지기까지 모든 과정은 극비에 부쳤다. 북한의 방해 공작 등을 고려한 조치다. 미국 유엔에 파견된 한국과 쿠바 외교관들 간에 소통이 있었고 지난해 2월 14일 양국 유엔대표부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관계가 시작됐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수교하려면 국무회의를 거쳐야 한다. 하루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수교안은 즉석 안건으로 상정돼 비공개 의결됐다.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수를 최소화한 것이다.
한국과 쿠바 간 수교 소식이 전해지며 북한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교 이후 북한은 쿠바에 대한 보도를 삼갔고 수교 한달여 만에 쿠바 주재 북한 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오랜기간 차근 차근 진행됐다.
양국 관계는 냉전이 끝나고 1999년 한국이 유엔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조금씩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듬해 쿠바에 수교 교섭을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진척은 더뎠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영사관계 수립을 다시 제안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미국이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쿠바와 외교 관계를 복원한 것도 우리 정부를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현 정부 들어 다자회의 때마다 꾸준히 쿠바의 문을 두드렸고 2023년 5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개최된 카리브국가연합(ACS) 회의에 참석하면서 호세피나 비달 쿠바 외교차관을 만난 뒤 넉달 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양국 외교장관이 비공개로 회담하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때 한국 측은 영사관계 수립 같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수교하는 방안을 제의했고, 쿠바 측은 상당히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오랜 기간 공을 들였고 쿠바 역시 한국과 경제협력이나 문화 교류 필요성을 크게 느낀 터라 수교가 성사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사관 개관을 통해 양국 국민들 간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쿠바에 거주하고 있거나 쿠바를 방문하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영사서비스, 재외국민 보호 등 편익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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