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6대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직접적으로 추가적인 상생 금융 재원 출연이나 가산금리 인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금융권은 여전히 긴장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외적인 여론을 의식해 은행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피하려고 한 듯하다”면서도 “다만 가산금리 인하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을 여전히 추진하고 있고 호출 자체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야당 대표와 은행장의 이례적인 만남을 앞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은행연합회는 정기 이사회에 비정기적으로 외부 주요 인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하지만 통상 금융위원장이나 한국은행 총재, 경제부총리, 국회 정무위원장 등 금융계 관련 인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정치권은 금융 당국을 통해 금융사들에 대한 지도를 하지 이런 방식으로 직접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과거 대통령들도 시중은행장들을 불러모아 간담회를 가진 일은 매우 드물었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이 사전에 작성한 현장 간담회 개요를 살펴보면 △‘역대급 호실적’ 속 은행의 사회적 역할 확대 방안 모색 △‘여전히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 완화 등 노골적으로 은행권을 압박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관치를 넘어 야(野)치”라는 비판이 제기돼기도 했다. 이를 두고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 대표는 민주당을 사유화한 것도 모자라 민간 금융시장까지 자기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한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민주당은 간담회에 대해 “압박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소상공인 지원 방안에 대해 이 대표는 ‘그동안 정부와 해왔던 것이 있으니 충실히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추가적인 지원 요구는 없었다는 의미다. 가산금리 인하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오늘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우리가 뭘 하자는 게 아니라 은행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라며 “은행 산업들이 어려움 겪지 않도록 지원하겠다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신 이날 간담회에서는 금융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방안과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안들이 논의됐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디지털 경쟁력이 중요하다”며 “디지털 규제와 관련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은행권과 공감한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에 실효적으로 어떻게 반영해 나갈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계가 우려했던 대출 가산금리 조정과 관련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압박감은 상당하다. 민주당은 서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낮출 방안 중 하나로 ‘부당 가산금리 산정 체계 개선’을 위한 은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소상공인의 원리금 부담 완화를 이유로 가산금리 체계 산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은행들은 자금 조달 비용의 기준이 되는 지표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금리를 결정한다. 신용 위험 프리미엄과 업무 원가 등을 반영하는 가산금리는 주로 은행이 대출 수요나 이익 규모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가산금리 인하는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은행법 일부 개정안’은 대출금리에 ‘지급준비금,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험료, 서민금융진흥원 등 각종 기금 출연료 반영 금지’를 명시했다. 은행들이 가산금리에 각종 보험료나 출연금 등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직접 가산금리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이런 형식의 논의 자체가 부담을 느끼게 한다”며 “미래 권력이 될지도 모르는 당의 요구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여당에서도 야당 수장과 은행장의 이례적인 만남 자체가 ‘군기 잡기’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민생 경제를 챙기겠다며 기껏 한다는 일이 6대 시중은행장을 모아서 군기 잡는 대통령 행세”라며 “진정으로 민생을 걱정한다면 반도체특별법을 비롯해 경제 회생에 시급한 법안들부터 먼저 처리해야 마땅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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