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거대 야당이 요구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구에 대해 처음으로 ‘국정협의회를 가동해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야당이 단독 처리한 TV수신료 통합징수법 등 3개 법안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뿐 아니라 경제계 등에서 제기됐다”며 “국정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여야와 정부가 함께하는 국정협의회에서 논의해 추경 편성에 나서자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선 예산 집행, 후 추경’을 고수하며 야당의 요구에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여파로 한국은행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6~1.7%까지 낮추는 등 실물경기가 빠르게 침체하자 확장재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가 16일 기준금리를 3.0%로 동결하면서 15조~20조 원 규모의 추경을 요구했고 국책연구기관장들도 전날 최 권한대행을 만나 ‘적극적인 거시 정책 집행’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여야도 추경 편성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예산 조기 집행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1분기 뒤에 그 필요성을 보겠다”면서도 “추경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고 말했다. 야당의 추경 주도권을 허용하지 않으려던 여당이 경기 위축이 심각하다는 진단이 쏟아지자 민생에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 추경을 검토할 수 있다고 물러선 것이다. 특히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는 정국 상황에서 국민의힘도 ‘민심 잡기’를 위해 추경에 전향적 입장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일 이 총재를 만날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추경도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다음 달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기간 연장’을 함께 요구했다. 다만 추경 규모와 지원 대상, 최종 시기 등 추경 방법론에 대한 여야 간 이견은 적지 않다. 민주당은 ‘이재명표 예산’인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추경에 초점을 두며 그 규모도 25조~30조 원을 주장하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이와 관련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는 재정의 기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혀 전 국민 지원금 등 현금 풀기에는 거리를 뒀다.
최 권한대행은 추경 협의를 시사하면서 야당 반발이 예상되는 거부권 행사를 강행했다. 그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인공지능(AI) 교과서 지위격하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TV수신료 통합징수법(방송법 개정안) △국가범죄 시효배제법(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쓴 4~6번째 법안이다.
그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게 돼 국회와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면서도 법안별 문제점을 꼬집었다. AI교과서 지위격하법과 TV수신료 통합징수법은 각각 ‘균등한 교육 기회 제공’ ‘국민 재산권 및 선택권’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 입법을 정부 입맛에 맞춰 취사선택할 작정이냐”며 반발했다.
이달 17일 야당이 단독 처리한 수정된 ‘내란 특검법’은 이날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내란 특검법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다음 달 2일이다. 최 권한대행은 설 명절 여론을 살핀 뒤 31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강력 반대하고 특검 구성 전 윤석열 대통령의 기소 가능성도 높아 거부권 행사에 무게가 실린다. 민주당은 이날 내란 특검법의 즉각 공포를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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