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넘게 등록금 동결을 유지해 온 주요 사립대학들이 속속 등록금을 올리거나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와 물가 상승, 인건비 부담이 겹치면서 재정난이 갈수록 심화하자 더 이상 동결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학 중 최소 16곳이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인상을 결정했다. 서울·경기 대학 주요 대학 중에서는 국민대(4.97%), 단국대(4.95%), 서강대(4.85%), 서울장신대(3.687~3.692%), 성공회대(5.1%), 성신여대(5.3%), 이화여대(3.1%), 한국외대(5.0%), 한신대(5.3%) 등이 최근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를 열어 올해 등록금 인상을 확정했다.
고려대와 연세대, 경희대는 법정 최대 인상률인 5.49%를 염두에 두고 인상 협의를 하고 있으며 중앙대와 한양대, 성균관대, 숭실대 등도 4~5%대 등록금 인상률을 고려 중이다. 통상 대학들이 1월 중순~말께 등심위에서 2025학년도 등록금을 의결하는 만큼 아직 등심위 회의록이 올라오지 않은 상당수 대학도 이미 숙고에 들어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부는 지난 2012년부터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대해 국가장학금 지원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며 사실상 등록금 동결을 강제해 왔다. 이로 인해 대학들은 16년간 등록금을 묶어둔 채 운영비 압박에 시달리며 ‘울며 겨자 먹기’ 상황을 이어갔다. 그사이 물가 상승의 여파로 대학들은 시설 노후화와 우수 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학 연간 등록금 평균은 국립대가 419만 원, 사립대가 752만 원으로, 이는 2011년의 국립대 435만 원, 사립대 769만 원보다 오히려 감소한 수치다. 이기정 한양대 총장은 “시설 노후화와 교원 확충 문제도 심각하지만 사학의 자율성을 고려할 때 등록금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며 “해외 대학 총장들과 얘기해보면 17~18년간 정부가 행정지도 명목으로 등록금을 동결시킨 사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박상규 대교협 회장도 “고등교육 재정 지원은 등록금 인상 여부와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며 정부가 등록금 규제와 재정 지원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생들도 과거처럼 등록금 동결을 무조건 요구하기보다는 학교의 재정난을 이해하는 분위기다. 최근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는 학생회 측이 먼저 등록금 4.5% 인상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 대학 총장은 “요즘 학생회도 재정 상황을 직접 살펴보면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5 대교협 정기총회’를 열고 고등교육 혁신과 등록금 인상 등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차기 대교협 회장으로 선정된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대학에서 한 해 동안 인건비와 운영비, 공과금을 감당하고 나면 남는 재정은 300~40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시설이 노후화돼 비가 새고 화장실 문짝이 떨어져도 수리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고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재정 상황이 더 열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학 재정에 숨통이 트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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