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가장 많은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가장 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스포츠란 점일 것이다. 아마 대다수 골퍼들은 이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18홀을 도는 동안 골퍼의 표정은 변화무쌍하게 흘러간다. 그때그때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즐거웠다가 화가 나고, 미소 지었다가 갑자기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잔뜩 긴장했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확 풀어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골퍼는 표정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다.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는 골퍼와 반대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표정을 감추는 골퍼다.
골프는 사실 짜증이 많이 나는 스포츠다. 성공하는 샷보다 실패하는 샷이 많기 때문이다. 주말골퍼가 18홀을 돌면서 몇 번이나 굿 샷을 날리겠는가. 그리고 미스 샷에 기분 좋은 골퍼 또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누군들 보기를 범했을 때 기분이 좋겠는가. 그래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웃는 이유는 긍정의 골프가 스코어를 좋게 하고 팬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골퍼들은 조금만 실수해도 오만상을 찌푸리는 골퍼보다는 미스 샷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골퍼를 더 좋아한다. ‘미소 샷’에는 향기가 나는 법이다.
‘미스 샷’에도 ‘미소’를 날리는 대표적인 선수는 김수지일 것이다. 굿 샷을 날릴 때는 물론이고 미스 샷이 나왔을 때에도 그에게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터득한 ‘인내의 미소’다.
최근 미소가 아름다운 골퍼가 또 나왔다. 작년 신인왕에 오른 유현조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웃음이 많다. 하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냥 즐거움을 선사한다.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눈물을 쏟으면서도 보여준 환한 미소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줬다.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선수가 이따금 보여주는 미소 또한 특별한 기쁨을 안긴다. 황유민이나 박현경, 김민별, 박결 같은 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미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여자골퍼들 중에서는 김아림의 미소가 또 대표적이다. 멋진 샷을 날려 칭찬받을 때도, 실수로 퍼팅을 놓쳤지만 격려의 박수를 받을 때도 그는 웃는다. 미소와 더불어 손을 배꼽 부분에 대고 고개를 숙이는 ‘배꼽 인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전인지도 미소 샷을 날리는 대표적인 선수 중 한명이다. 미스 샷 후 나오는 전인지의 미소는 ‘억지웃음’일 수 있다. 감정을 숨기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음속 감정은 화를 내거나 울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숨기고 겉으로는 애써 웃는다. 김세영이 이따금씩 갤러리를 향해 ‘씨익~’ 날리는 미소는 또 어떤가. 표정 변화가 없는 박인비나 고진영도 짜증을 내는 법은 없어도 가끔 미소를 지을 때면 세상 그 어느 선수보다 아름답다.
셰익스피어의 명언 하나가 있다. “힘들 때 우는 건 삼류다. 힘들 때 참는 건 이류다. 하지만 힘들 때 웃는 건 일류다.” 아픔을 담은 웃음은 오히려 더 눈부신 법이다.
웃음에도 다양한 감정이 들어간다. 어떤 감정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웃음의 종류도 다양하다. 폭소(爆笑)는 폭발하듯 갑자기 웃는 웃음이다. 크게 입을 벌리고 떠들썩하게 웃는 웃음을 홍소(洪笑)라고 한다. 실소(失笑)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일컫는다. 조롱하는 태도로 웃는 조소(嘲笑)가 있고 쓴웃음을 뜻하는 고소(苦笑)도 있다.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겨 웃는 웃음은 냉소(冷笑)다.
여러 웃음이 있지만 역시 그래도 최고의 웃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미소(微笑)일 것이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천의 얼굴을 가진 웃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웃음 보다 더 우리를 기쁘게 하는 건 대한민국 여자골퍼들이 날리는 미소다. 2025년에도 한국 여자골퍼들은 다시 ‘미소 샷’을 날릴 것이다. 그래서 더 믿음직한 대한민국 여자골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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