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첫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 개입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침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23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즉각적인 금리 하락을 요구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내려야 한다. 우리 금리를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다보스포럼 연설 당시에는 연준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취재진과 만나 “적절한 시기에 파월을 만나 그렇게 (대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응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강력한 입장을 낼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금리가 “많이(a lot)” 낮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들(연준)보다 금리를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사흘 만에 내놓은 첫 금리 관련 메시지다. 후보 시절부터 연준의 정책을 비판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금리 인하 압박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으로 연준과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제도로 보장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통화정책에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드러냈다. 미국인들의 지출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 측이 내세우는 논리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통화정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동원될 경우 경제적 후폭풍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파월 의장도 “연준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혹은 어떤 정치적 결과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우리의 정책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특히 연준이 28~29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9월 이후 3회 연속 금리를 내렸던 연준은 올해는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다. 인플레이션을 완전하게 제어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거시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의 금리 인하 촉구에도 이날 금융시장은 차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99.5%로 반영했다. 전날보다 0.6%포인트 오른 수치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도 4.64%로 전일 대비 3bp(1bp=0.01%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다만 주식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발언을 호재로 평가해 일제히 강세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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