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또는 임시 비자로 미국에 있는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기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해 온 ‘출생시민권’ 제도가 헌법에 명시된지 160년만에 위기를 맞이했다. 이민자 규제에 사활을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 20일(현지시간) 해당 제도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시애틀 연방법원이 즉각 해당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었지만 트럼프는 임기 내내 해당 제도의 폐지를 지속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생시민권이란
출생시민권이란 부모의 신분이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기에게 부여되는 시민권이다. 근거법령은 수정 헌법 14조로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해 미국의 관할권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과 그들이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출생시민권이 헌법에 명시된 것은 약 160년 전이다.1857년 미국 대법원이 흑인 노예의 후손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하자,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종전 뒤인 1866년 미 의회는 수정헌법 14조를 통해 혈통이 아닌 출생지를 기준으로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담긴 내용은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수정헌법 14조에 따른 시민권 획득은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 자녀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가 취임한 날 서명한 행정명령에도 이같은 입장이 그대로 담겼다. 불법 이민자의 자녀는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출생 시민권이 '전쟁이나 침략'에는 적용되지 않는 만큼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침략'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출생 시민권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트럼프, 임기 내내 출생시민권 흔들 듯
행정명령이 내려진 다음날 22개 주가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고 23일(현지시간) 시애틀 연방법원의 존 코에너 판사는 불법체류자의 자녀에게는 행정명령이 “위헌”이라며 효력을 14일간 정지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출생시민권 제한 시도는 지속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연방 법원과 대법원에 보수 성향 판사를 추가로 임명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준비를 해놓고 있다.
출생시민권 논쟁이 이어지면 이에 따른 사회 분열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노예제 폐지 이전의 흑인처럼 미국 사회 내에서 시민권이 없는 소외집단이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색 인종 공동체를 특히 표적으로 삼는 이런 정책변화는 (미국 내에 시민권이 인정되지 않는) 영구적 하위계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에서는 연간 약 30만명의 서류미비(불법) 이민자 자녀가 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3년 기준으로 미국의 신생아 수가 총 360만명이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기 전체의 8%에 해당하는 숫자라고 CBS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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