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텍들도 1~2개의 우수 후보 물질을 기반으로 미국에 회사를 세워 미국 자본의 투자를 받고 현지 인수합병(M&A)을 통해 소위 ‘미국 회사’로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헬스케어콘퍼런스(JPMHC) 때 만난 한 바이오 전문 투자 업체 대표는 “미국 바이오텍은 기술이전을 넘어 빅파마가 지분 투자를 하거나 아예 M&A 하는 경우가 잦다. 중국의 바이오텍이 이런 방법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보스턴 등에 지사를 설립해 현지 후보 물질을 발굴하거나 국내에서 기술 수출을 하는 식으로 글로벌 진출을 도모해왔다. 유한양행의 ‘렉라자’처럼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회사들이 기술 수출 후 파이프라인이 진전되지 않거나 후보 물질이 반환돼 계약금만 받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에서 만난 바이오텍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한국 바이오텍의 미국 ‘오프쇼어링’을 강조했다. 또 다른 바이오텍 대표도 “중국이 자국 임상 데이터로 새로운 글로벌 표준을 만들려 했고 일본도 자국 신약을 글로벌화하려 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증시 불안으로 결국 무너졌다”며 “표준은 미국이 정한다는 게 다시 증명된 셈으로 국내 바이오텍들도 이제 미국에서 항해할 범선을 미국에서 만들어 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최근 일부 한국 바이오텍들이 이런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가 현지 M&A를 목표로 미국 법인을 설립했고 국내에서도 비만약 개발사 등 몇 개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와 단순 기술이전을 넘어 M&A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현지 펀딩과 파트너링이다. 법인 설립과 초기 임상은 국내 자본과 기술로도 가능하지만 현지 네트워크가 필요한 두 분야에 실패한다면 결국 다시 한국 자본의 손을 빌려야 하고 국내 시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바이오 산업이 한국의 미래 먹거리라면 정부와 바이오텍, 투자 그룹이 힘을 합쳐 미국에 더 많이 도전하고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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