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60년 넘게 ‘연 5푼(%)’으로 고정돼 있는 법정이율 대신 변동이율제 도입을 추진한다. 현행 제도가 물가·금리 등이 수시로 변하는 시장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민사 분쟁에 적용되는 이자율을 정하는 근본적인 기준이 바뀌는 만큼 개정안이 시행되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각종 민사 분쟁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7일 법정이율, 계약의 성립·효력·해제 등 계약법 규정에 대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법정이율을 한국은행 기준금리, 시장 이율, 물가 상승률, 그 밖의 경제 사정의 변동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정이율은 당사자들이 별도로 정한 이율이 없을 때 적용되는 이율인데 1958년 제정 이후 67년간 5%로 고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법정이율과 시중금리가 격차가 벌어지면 채권자·채무자가 각자에게 유리하게 변제 청구나 상환 시점을 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법정이율은 △채무불이행의 지연 손해배상 △각종 불법행위 손해배상 △계약관계 무효로 부당이득 반환 의무 발생 등에도 적용된다. 지난해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항소심 재판부가 최 회장에게 재산 분할 판결을 내리면서 ‘대법원 확정 판결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로 계산한 이자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때도 법정이율이 근거가 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가스라이팅을 당해 의사표시를 한 경우 이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종교 지도자와 신도, 간병인과 환자 등의 관계처럼 특정인에게 심리적으로 강하게 의존하거나 긴밀한 신뢰 관계에 의해 스스로에게 불리한 의사표시를 한 경우 이를 취소할 수 있도록 ‘부당 위압’ 법리를 도입한다. 또한 계약 이후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으면 계약 수정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개정안에 추가됐다. 현행법에는 계약 해제·해지를 할 수 있다고만 명시돼 있다. 이 밖에 대리인이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해 대리행위를 한 경우 효력이 없다는 대리권 남용 조항도 신설됐다.
법무부는 다음 달 19일까지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민법의 전면적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국가적 과제”라며 “국민 생활과 경제활동의 기본법인 민법을 현대화해 국민의 편익과 민법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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