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한국 수어의 날(매년 2월 3일)’을 맞이한 가운데 수어의 인식 개선과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국 지자체들은 수어 통역 서비스 확충, 관련 법안 마련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기술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5’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수어 통역기가 공개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수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에서 여주인공을 함묵증에 걸린 수어통역사로 설정한 점이 관련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국가공인 수어통역사 필기시험에서 900명 중 420명이 합격해 최근 5년간 가장 많은 합격자가 나온 것만 봐도 수어 관련 전문인력 수요가 확대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어통역사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 지역의 경우 2만7000여 명의 청각·언어장애인이 거주함에도 등록된 수어통역사는 34명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어 통역사 1명당 약 800명의 의사소통을 지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수어통역사들의 건강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얼핏 단순한 동작처럼 보이는 수어는 지속적인 손과 손목의 사용으로 인한 신체 부담이 크다. 뉴스 통역과 같이 빠르고 정확한 진행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그 부담이 더욱 가중된다.
특히 ‘손목터널증후군’은 수어통역사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으로 꼽힌다. 미국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수어 관련인 응답자의 59%가 손목 및 손 통증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 중 26%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목터널증후군 발생률 역시 일반인보다 5배 가량 높았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의 수근관이 좁아지면서 정중신경이 압박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찌릿한 통증과 저림, 손에 힘이 빠지는 감각 이상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병이 진행될 경우 물건을 잡는 것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촉감 마비 증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초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손목터널증후군 여부는 간단한 자가진단법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양 손의 손가락을 아래로 한 뒤 손등을 맞댄 채 1분 이상 유지해보자. 이 때 통증이 느껴진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손목터널증후군은 대부분 수술 없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침·약침을 중심으로 비수술 치료에 나선다. 침치료는 대릉, 내관, 노궁혈 등 주요 혈자리에 침을 놓아 손목 주변의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해 통증을 줄인다. 정제된 한약재 성분을 주입하는 약침 치료는 염증 반응을 빠르게 완화시키고 손상된 조직의 회복을 돕는다.
침치료가 손목터널증후근 환자에서 양의학의 약물치료보다 뛰어난 증상 개선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SCI(E)급 국제학술지 ‘보건의료 대체요법(Alternative Therapies in Health and Medicine)’에 게재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침치료 환자군과 약물치료 환자군의 치료 직후 ‘통증·감각증상 척도(Global Symptom Score)는 각각 평균 14.46과 14.33으로 유사한 수준이었으나 3개월 후 5.62, 9.70으로 차이가 벌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침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증상이 더 큰 폭으로 개선됐다는 의미다.
수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 고유의 언어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수어통역사들의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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