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이 일본의 방위비를 2배 증액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만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구서가 우리를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일 간 합의 내용은 일본처럼 대미 무역흑자국이자 미군이 주둔한 우리의 협상 전략에도 참고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권하자마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며 동맹 간 조율을 생략한 채 북미 회담에 초점을 두는 듯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원칙을 천명한 점은 다행스럽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의 방위비 관련 합의 사안은 일본이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트럼프 1기 행정부 대비 2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또 미국으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 4565억 원) 규모의 무기도 사들이기로 했다. 회담 후 공개된 공동성명에는 ‘2027회계연도 이후 방위력 강화’도 포함됐다. 일본이 2027회계연도 이후에도 방위비를 더 늘리겠다고 미국에 약속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2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6% 수준이던 일본의 방위비는 2027회계연도까지 2%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자청해서 방위비 증액을 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대미 투자를 1조 달러로 늘리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확대하기로 한 데 이어 방위비 증액까지 전천후 선물로 트럼프의 예봉을 무디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실제 이번 합의에 대해 일본이 이미 군비 증강을 추진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양보한 것도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이는 한미 회담에도 참고할 만하다. 트럼프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명분으로 한국에 방위비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에서 "내가 백악관에 있었다면 한국은 매년 100억 달러(약 14조 원)를 내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근거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1조 5192억 원)의 9배가 넘는 금액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한층 공격적인 관세 전쟁에 나서고 있고 한국과의 연합훈련 중단, 북한과의 대화 물꼬 등을 통해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만큼 일본 사례를 통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동성명에는 ‘두 정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달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미국이 관여한 공식 외교문서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 비핵화를 재차 강조한 만큼 북미 대화에서 ‘한국 패싱’ 없이 공조할 여지도 커졌다는 관측이다.
북한은 반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각본에 따라 구축된 군사동맹 체제와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조선반도(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새로운 격돌 구도를 만드는 근본 요인”이라고 밝혔다고 9일 보도했다. “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해나갈 확고부동한 방침”도 언급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일 정상회담의 북한 비핵화 합의를 인식해 핵무력 고도화 의지를 재천명하고 향후 북미 대화의 팽팽한 기싸움을 예고한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 않는 등 수위를 조절했다”고 분석했다. 또 “한미 군사훈련 등을 나열하며 핵무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도 연합 군사훈련 중단·유예가 북미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는 간접적인 대미 메시지도 전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