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 보장과 불구속 수사를 권고한다는 안건을 수정·의결했다. 내용을 일부 수정했지만 안건이 통과되며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불붙은 탄핵 반대 주장에 기름을 끼얹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소식이 전해지자 ‘윤석열 대통령’을 외치며 환호했다.
인권위는 10일 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상정, 논의를 거친 뒤 일부 내용을 수정해 의결했다.
인권위원들은 해당 안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용원 상임위원을 중심으로 한 찬성 측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직위 때문에 탄핵심판이나 형사 재판에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파와 상관 없이 무죄추정의 원칙 등 법 집행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고 있는 지 따지자고 주장했다. 반대 측 위원들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설립된 인권위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방어권과 관련한 의견을 내는 것은 독립성 침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결국 3시간이 넘는 논의 끝에 정족수 6인을 가까스로 충족하며 의결됐다. 일부 내용이 수정된다는 조건 아래 안창호 위원장을 포함한 찬성 6명(강정혜·김용원·이충상·이한별·한석훈), 반대 4명(김용직·남규선·소라미·원민경)으로 가결됐다.
다만 안건에 찬성한 강정혜 비상임위원이 안건의 일부 내용과 주문에 이견을 밝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심리시 형사 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직무 조사 실시 등 엄격한 적법 절차 준수할 것’ 등의 주문 외에는 상당수가 수정될 전망이다. 이렇게 주문안 조항을 나눠 의결하는 일은 그간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누더기’ 의결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인권위 내부에서도 주문을 정리하는 데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안건이 가결되자 1층에서 대기 중이던 지지자들은 “이제 됐다”면서 태극기를 흔들거나 서로를 얼싸안았다. 한 지지자는 “인권위의 결정인 만큼 (이번 결정이) 상징성을 가질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인권위 명의로 윤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헌법재판소장에게 권고되면서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인권 침해’ 의견이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오전부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인권위 정문 앞에 몰려 건물 점거에 나서는 등 인권위 일대를 긴장 상태에 놓이게 했다. 한 지지자는 영화 ‘캡틴아메리카’ 주인공의 의상을 입고 방패를 든 채 인권위 사무실이 위치한 14층을 막기도 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사다리를 소지한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뱉으며 “키가 작은 걸 보니 중국인이 아니냐”고 조롱하거나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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