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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의 몰락 [여명]

'금융 생태계 한 축' 대부업 존폐 기로

이자제한에 서민의 마지막 보루 흔들

사채 내몰리고 정책금융 손실 눈덩이

당국, 서민금융 로드맵부터 내놔야

김영필 금융부장




“대부 업체들이 왜 200만~300만 원씩 빌려주는지 압니까. 식당에서 한두 달 정도만 일하면 갚을 수 있는 금액이어서 그래요.”

15년도 더 됐다.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이 대부 업체 ‘러시앤캐시’를 이끌던 때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사채는 돈을 빌려 가는 사람의 가족이 누군지 보지만 대부업은 차주만 따진다”며 대부업과 사채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사채는 돈을 떼일 경우 가족들에게 받아내는 데 혈안이지만 대부업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재일 교포 출신으로 야쿠자 자금으로 돈놀이를 한다는 음해에도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위한 금융업을 한다는 자부심과 떳떳함이 컸다. 대부업을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지금은 어떨까. 대부업은 하루가 다르게 쪼그라들고 있다. 그사이 최 회장도 대부업을 버리고 저축은행으로 옮겨 갔다. 최근에 만난 대부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대부업은 불법 사채가 아니다”라며 “정부도 관심이 없는데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대부업 대출 규모는 12조 2000억 원으로 전년도 말 대비 2.4% 감소했다. 이용자도 1만 4000명이나 줄었다. 낮은 수준이지만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지난해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2.6%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서민들의 소득이 갑자기 급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상 법정 최고 금리는 연 20%다. 대부 업체는 예금을 받지 못하므로 다른 금융사에서 돈을 빌리거나 기업어음(CP)·사모사채 등을 찍는다. 저축은행에서 조달할 경우 8%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연체를 감안한 대손 비용이 약 13%포인트 정도 된다고 한다. 조달에 대손 비용만 더해도 21%다. 한때 49%였던 최고 금리는 여러 차례 인하돼 2021년 7월부터 20%다. 원가를 생각하면 못해도 21%를 받아야 하는데 고객에게는 20%밖에 받지 못하니 장사가 안 된다. 자기 돈을 까먹지 않으려면 대출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점이 있다. 손해를 본다면서 대출이 12조 원을 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숨기는 게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답은 명확하다. 대부 업체들은 고객들 중에서 신용도가 높은 사람만 골라 받고 담보를 챙기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NICE평가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부 업체의 평균 대출 승인율은 2021년 12.3%에서 2023년 4.9%로 낮아졌다. 서민을 위한다는 이유로 법정금리를 낮추고 대부업을 때려잡을수록 서민들은 점점 더 갈 곳을 잃게 된다. 서민금융의 역설이다.

금융은 하나의 생태계다. 융복합이 대세라지만 은행을 중심으로 한 1금융권에 서민을 대상으로 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뜻하지 않은 위험을 보장해주는 보험사, 신용을 미리 끌어다 쓰는 카드와 캐피털 등이 어우러져 있다. 대부업은 2금융권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그런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대부업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생태계의 한 축이 사라지면 서민들은 정책금융 상품을 쓰거나 사채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을 더 공급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책금융은 공짜가 아니다. 햇살론뱅크의 경우 취약차주가 돈을 갚지 못해 공공기관이 대신 갚아준 비율인 대위변제율이 16.8%로 전년 대비 두 배나 폭증했다. 공공기관의 손실은 정부의 손실이고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정치 금융’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의 덫에 빠져 있다. 소비 침체에 허덕이는 서민과 자영업자는 더 많아질 것이다. 금융 당국이 불법 사금융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뼈대로 한 대부업법 개정안의 7월 시행을 앞두고 서민금융 지원책을 이달 중 발표한다고 한다. 이제 정부는 단순 지원책보다 유명무실해진 대부업을 존속할지,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서민금융을 어떻게 가져갈지, 정책금융과의 영역 구분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같은 밑그림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당국이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대부업과 서민금융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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