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앞의 한 부동산. 오전부터 단 한 사람의 방문객도 찾지 않은 까닭에 공인중개사들은 휴대폰을 보며 연신 하품만 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졸업과 입학 시기가 겹치는 2월이면 원룸을 구하러 온 손님들이 사무실 문 밖까지 줄을 선다는 얘기는 옛말이었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늘어난 월세 부담 탓에 대학생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기숙사를 구하지 못한 지방 출신들만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입주하는 형국이다. 심지어 학교 앞을 포기하고 경기도 등 월세가 싼 지역에서의 통학을 감수하는 사례도 많다. 혜화동 공인중개사 A 씨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지금 집주인 10명 중 6~7명은 월세를 올리겠다고 한다”면서 “코로나 이전 30만 원대에서 시작했던 방들을 이제 50만 원으로는 구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높아진 대학가의 원룸촌 월세는 통계로도 관찰된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1월 등록된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의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원룸(전용면적 33㎡이하) 매물을 분석한 결과 평균 월세는 60만 9000원으로 집계돼 1년 새 6.1% 뛰었다. 같은 기간 성균관대 인근 지역의 평균 월세는 62만 5000원으로 33% 올라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다른 대학가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은 상당수 가게에 ‘임대 문의’를 알리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이화여대 인근은 주요 대학가 원룸촌 가운데 월세가 가장 비싼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같은 고금리 상황에서는 월세도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잇따라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 또한 수요 측면에서 ‘월세 선호 현상’을 부추긴 하나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집주인들도 할 말은 많다. 월세를 올려 받지 않고는 늘어난 비용 부담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항변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원룸을 임대하는 60대 홍 모 씨는 “방을 팔기 어려웠던 팬데믹 때부터 감내해온 각종 운영비 상승분을 이제는 월세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우리 입장에서도 하는 수 없이 매물을 높은 가격에 내놓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학가에서 방을 구해 자리 잡는 학생들이 줄어들면서 상권 역시 침체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신촌·이대 상권에서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12.9%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5%포인트 상승했다. 이날 점심시간대에 성균관대 앞 대로변을 걸어 다니는 행인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뒷골목의 경우 텅 빈 가게를 지키는 자영업자 말고는 유동 인구 자체가 없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이곳에서 장사한 지 11년 정도 됐지만 이렇게 힘든 시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월세가 대학가 상권의 위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식사만 해도 외식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지출이 줄어드는 대신 편의점 등지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가 늘게 된다”면서 “이 경우 상권 회복이 더욱 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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