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시종일관 몸을 흔들어댔던 소년이 유치원에서 한 해를 보낸 뒤 받아든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가위질할 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 코트를 스스로 입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늘 즐거워합니다.” 이듬해에는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아이”라는 새로운 평가를 받았고 “짜증을 내고 불만족스러워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걱정도 뒤따랐다. 올해 일흔이 된 소년은 “나는 흥미를 느끼는 모든 것-독서와 수학, 혼자만의 사색 등-에는 강렬한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인물, 바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 이야기다.
책 ‘소스코드’는 게이츠가 생애 처음으로 직접 써내려 간 일종의 회고록이다. 3부작으로 완성될 자서전의 첫 책이기도 하다. 책은 ‘나의 시작(My Beginnings)’이라는 부제처럼 인생의 바탕이 된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 창업 초기의 굴곡 등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게이츠는 특히 가족 등 주변 인물과 유년 시절 자신을 둘러싼 생활 환경 등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에 불을 지핀 운영 체제 ‘윈도우’ 탄생의 주역이자 1987년 31세에 최연소 억만장자에 오른 자신의 성공이 오롯이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담백하게 썼다. 1960년대 고속 성장하던 도시 시애틀의 백인 중산층 동네에서 자란 그는 “부유한 미국에서, 그것도 백인 남성에 유리한 사회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일종의 출생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중·고교 시절을 보낸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가 전화선으로 접속해 컴퓨터를 나눠 쓸 수 있도록 한 미국에서도 선도적으로 컴퓨터를 도입한 학교였던 점도 행운이었다. 게이츠는 “나는 그렇게 1968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게 됐다. 그런 환경이 조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질적인 요소가 합쳐져야 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여전히 놀랍다”고 했다.
물론 성공의 원동력으로 게이츠의 열정과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컴퓨터에 푹 빠진 10대 시절 눈길 하이킹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프로그램 코드를 떠올렸고, 대학에서도 하루 두 시간만 자며 674시간 코드만 짜기도 했다. 이렇듯 게이츠는 자신의 사례를 토대로 결국 거대한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은 물론 주변인들의 강력한 지지와 타이밍, 행운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설득한다.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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