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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생산 원료 11.7%뿐…10년간 109개 의약품 공급 차질

[흔들리는 '의약 주권']

팬데믹때부터 수급 불안정 심화

심근경색 등 필수의약품도 중단

中·印 원료가 품질 높고 가격 싸

약가우대만으로는 국산화 한계

"설비·R&D 투자 등 직접 지원을"





최근 10년 동안 원료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공급이 중단됐던 의약품은 109개에 달했다. 이 중에는 일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약품이어서 ‘퇴장방지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의약품도 포함됐다.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해외 의존도가 90%에 가까울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원료의약품 수입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경우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면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가장 흔히 쓰이는 해열제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만 해도 100% 수입산이다. 전문가들은 원료의약품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약가 우대 정책을 넘어 국내 원료의약품 생태계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총 109개의 의약품이 원료의약품 수급 문제로 생산·수입·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보고됐다. 2019년 6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로 확산됐던 2021년 17개로 급증했고 2023년에는 19개까지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었지만 이 같은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해도 총 14개 의약품이 원료 부족으로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의약품 생산 중단으로 환자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공급이 중단된 의약품에는 정신분열병·패혈증·파킨슨병·심근경색 등 중장기 질환 치료제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장방지의약품인 하나제약의 ‘엘카닌주’는 현재도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퇴장방지의약품은 경제성이 낮아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지만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을 뜻한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원료 수급 문제가 자주 대두되고 있다”며 “각국의 의약품 자국화 추세와도 연결돼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의약품 공급 중단이 발생하는 것은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는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제조된 원료의약품 비중은 11.7%에 불과했다. 나머지 88.3%는 인도·중국·대만 등 해외에서 수입됐다.



더 심각한 점은 인도·중국 두 국가에서 수입하는 원료의약품 비중이 지난해 70%를 넘었을 정도로 특정 국가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은 환경적·정치적 요인으로 원료의약품 산업 환경 변화가 커 공급망 불안정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 인도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해열소염진통제·항생제·호르몬·비타민 등 26개 의약품의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의 경우 2015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국내 제약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시행되면서 중국 내 제약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해상 운송까지 차질을 빚기도 했다. 정순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국내외 원료의약품 산업 현황 및 지원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항생제 등 특정 의약품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의 의약품 무기화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도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국산 원료를 사용한 국가 필수 의약품에 대해 약가를 우대하는 정책을 최근 시행했다. 국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된 성분의 제네릭(복제약)도 원료를 국산으로 변경할 경우 국산 원료 신약과 동일한 방식으로 원가 인상분을 반영해 약값을 더 높게 인정받도록 한 것이다. 제약사는 제네릭 원료를 국산으로 변경하면 해당 품목에 대해 상한 금액 인상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약 업계는 이 정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약가 우대 대상이 국가 필수 의약품으로 한정돼 있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이 제한적인 데다 상대적으로 비싼 국산 원료를 사용할 경우 생산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국산 원료를 사용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반면 중국과 인도는 공급 가격이 싼 데다 미국과 유럽 고객을 대상으로 원료를 생산한 지 오래돼 품질 면에서도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도 “국산 원료를 쓰려면 일단 인건비와 품질 검사 비용 때문에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원료를 바꾸면 바뀐 공급처를 기준으로 처음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까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는 업계도 약가 우대만으로는 생산량을 확대할 유인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종근당(185750)바이오·하이텍팜·코오롱생명과학 등 주요 원료의약품 업체들은 90% 이상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내수 중심 기업들인 국전약품·파일약품 등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국내 원료의약품 제조 업체들은 발효 기술, 광학 활성 제조 기술 등 특정 기술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낮은 인건비와 대량 생산을 내세우는 인도·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 국내 원료의약품 업체 관계자는 “국내 원료의약품 업체들이 기술적으로 우위인 분야도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부족하다”며 “단순한 약가 우대 정책만으로는 국내 생산을 촉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료의약품 공급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파격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 생산 및 개발 지원, 해외 수출 지원 등 원료의약품 생태계 자체를 강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료의약품 생산 업체들의 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후화된 제조 설비 교체 등 생산 설비 등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생산능력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국산 원료의약품으로 약가 우대를 받아도 많이 팔리면 사후에 약가가 인하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원료를 국산화한 약에 대해서는 사후 관리를 제외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원료의약품을 국산화하려면 차등적이고 근본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약가 우대 대상의 원료의약품 품목 결정, 원료의약품 산업 클러스터 조성,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등이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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