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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소화제도 못 살라”…원료 수입 의존 70%의 위험한 현실

[흔들리는 '의약 주권']

팬데믹때부터 수급 불안정 심화

심근경색 등 필수의약품도 중단

中·印 원료가 품질 높고 가격 싸

약가우대만으로는 국산화 한계

美 3년 후 원료 25% 자국 생산

선진국 시설투자·리쇼어링 지원

"설비·R&D 투자 등 직접 지원을"





국내 의약품 원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져 ‘의약품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인도와 중국산 원료의약품 수입 비중이 70%를 넘어서는 쏠림 현상마저 나타났다. 미중 갈등과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공급망 불안이 심화해 이미 일부 의약품은 원료를 구하지 못해 품절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여기에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까지 더해져 인도·중국 현지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경우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도 있어 정부와 업계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공급 중단된 의약품 109개…해마다 늘어나는 품절 사태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총 109개의 의약품이 원료의약품 수급 문제로 생산·수입·공급이 중단된 것으로 보고됐다. 2019년 6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로 확산됐던 2021년 17개로 급증했고 2023년에는 19개까지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었지만 이 같은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해도 총 14개 의약품이 원료 부족으로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의약품 원료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현지 사정에 따라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약품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한림제약의 통풍 치료제 ‘유리논정’은 원료 부족에 따른 품절 상태로 공급이 중단된 상태다. 이 외에도 건일제약의 항생제 ‘아모크라주’, 화이자의 소아 항생제 ‘지스로맥스’ 등도 원료 수급 차질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약품 생산 중단으로 환자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공급이 중단된 의약품에는 정신분열병·패혈증·파킨슨병·심근경색 등 중장기 질환 치료제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장방지의약품인 하나제약의 ‘엘카닌주’는 현재도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퇴장방지의약품은 경제성이 낮아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지만 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을 뜻한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원료 수급 문제가 자주 대두되고 있다”며 “각국의 의약품 자국화 추세와도 연결돼 있다”고 전했다.

인도·중국 의존도 심화…국산 원료 생산 10%대에 불과


국내에서 의약품 공급 중단이 발생하는 것은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하는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식약처 원료의약품(DMF)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등록된 원료의약품 545개 중 인도산이 240개, 중국산이 152개로 전체의 72%를 차지해 70%를 웃돌았다. 1년 전인 2023년 두 국가에 대한 원료의약품 수입 비중(69%)보다 3%포인트 상승했다. 국내에서 제조한 원료의약품 비중은 지난해 11.7%로 겨우 10%를 넘겨 전년(9.8%)보다 높아졌지만 2017년 17.4%, 2018년 21.3%에 비해 여전히 낮은 상태다.

인도와 중국은 환경적·정치적 요인으로 원료의약품 산업 환경 변화가 커 공급망 불안정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 인도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해열소염진통제·항생제·호르몬·비타민 등 26개 의약품의 수출을 중단한 바 있다. 중국의 경우 2015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국내 제약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시행되면서 중국 내 제약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해상 운송까지 차질을 빚기도 했다. 정순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국내외 원료의약품 산업 현황 및 지원 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항생제 등 특정 의약품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의 의약품 무기화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원료의약품 자급률 제고 정책 실효성 부족…“약가 우대만으로는 한계”


우리나라 정부도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국산 원료를 사용한 국가 필수 의약품에 대해 약가를 우대하는 정책을 최근 시행했다. 국가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된 성분의 제네릭(복제약)도 원료를 국산으로 변경할 경우 국산 원료 신약과 동일한 방식으로 원가 인상분을 반영해 약값을 더 높게 인정받도록 한 것이다. 제약사는 제네릭 원료를 국산으로 변경하면 해당 품목에 대해 상한 금액 인상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약 업계는 이 정책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약가 우대 대상이 국가 필수 의약품으로 한정돼 있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이 제한적인 데다 상대적으로 비싼 국산 원료를 사용할 경우 생산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국산 원료를 사용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반면 중국과 인도는 공급 가격이 싼 데다 미국과 유럽 고객을 대상으로 원료를 생산한 지 오래돼 품질 면에서도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도 “국산 원료를 쓰려면 일단 인건비와 품질 검사 비용 때문에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원료를 바꾸면 바뀐 공급처를 기준으로 처음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까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는 업계도 약가 우대만으로는 생산량을 확대할 유인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종근당(185750)바이오·하이텍팜·코오롱생명과학 등 주요 원료의약품 업체들은 90% 이상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내수 중심 기업들인 국전약품·파일약품 등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국내 원료의약품 제조 업체들은 발효 기술, 광학 활성 제조 기술 등 특정 기술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있지만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낮은 인건비와 대량 생산을 내세우는 인도·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 국내 원료의약품 업체 관계자는 “국내 원료의약품 업체들이 기술적으로 우위인 분야도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부족하다”며 “단순한 약가 우대 정책만으로는 국내 생산을 촉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유럽, 원료의약품 국산화 박차…한국도 대응해야


의약품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은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담대한 목표: 5년 이내에 모든 저분자 원료의약품의 25%를 미국으로 리쇼어링’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2028년까지 원료의약품의 25%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유휴 제조 시설을 활용하기 위한 공공 인센티브 △제네릭 의약품 리쇼어링에 필요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인센티브 등 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료의약품 국내 생산을 늘리려면 정부가 직접 나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원료의약품 인센티브가 핵심인 ‘핵심의약품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약물연합은 핵심의약품법에 담을 주요 과제로 △유럽 ​​위원회에서 핵심 의약품 및 원료의약품 제조 자금 지원 △제네릭 가격 책정 문제 해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술 개선 지원 등을 법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이와 함께 유럽의약품청과 유럽 의약품안전관리기구는 의약품 공급 부족, 안전 조정 그룹을 통해 공급 예측 모니터링, 제약사의 공급 업체 다각화 권유, 의약품 비축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원료의약품 공급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파격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뿐만 아니라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 생산 및 개발 지원, 해외 수출 지원 등 원료의약품 생태계 자체를 강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료의약품 생산 업체들의 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후화된 제조 설비 교체 등 생산 설비 등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생산능력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국산 원료의약품으로 약가 우대를 받아도 많이 팔리면 사후에 약가가 인하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원료를 국산화한 약에 대해서는 사후 관리를 제외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원료의약품을 국산화하려면 차등적이고 근본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약가 우대 대상의 원료의약품 품목 결정, 원료의약품 산업 클러스터 조성,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등이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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