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과학계가 거미를 '좀비'로 만드는 신종 곰팡이를 발견해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곰팡이 분류학 및 진화'는 과학자들이 거미의 행동을 조종하는 신종 곰팡이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 곰팡이는 '기벨룰라 아텐보로이(Gibellula attenboroughii)'로 명명됐다.
이 발견은 2021년 TV 제작진이 북아일랜드 캐슬 에스피 습지센터의 폐쇄된 화약 저장고에서 거미줄 밖에서 죽어있는 거미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동굴에서 추가 관찰이 이뤄졌다.
주앙 아라우조 코펜하겐대학 조교수는 "개미나 말벌 등 소수 사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과(科)에서 행동 조작의 새로운 기원을 발견했다"며 "기생 생물계에서는 매우 흔치 않은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신종 곰팡이는 전적으로 거미류만을 감염시킨다. 연구진은 2022년 11월 브라질에서 다른 종의 지벨룰라 곰팡이가 거미를 조종해 죽기 전 나뭇잎 아래로 이동시키는 현상을 관찰한 바 있다.
제이 스태프스트롬 코넬대학교 박사는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들은 대부분 자신의 거미줄에 머무는 것을 선호하며, 지면에서 걷는 것은 매우 서투르다"며 "곰팡이가 숙주를 감염시켜 행동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확산을 돕게 만드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아직 이 곰팡이의 정확한 작동 메커니즘은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곰팡이가 거미를 은신처 밖으로 유인해 공기 순환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 포자 확산을 돕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라우조 박사는 "곰팡이는 1억 년 이상 전에 진화했으며, 이러한 거미들과 다른 곰팡이 종들, 그리고 다른 곤충들과 공존해왔다"며 "오히려 좀비 개미 곰팡이처럼 숲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카고 필드 자연사박물관의 매튜 넬슨 박사는 "현재까지 약 15만 종의 곰팡이가 공식적으로 기록됐지만, 이는 전체 균류의 약 5%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번 연구의 의의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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