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기간이 1년도 채 안돼 신약이 절실했던 전이성 위암 환자들을 위한 표적항암제 ‘빌로이’가 올 3월부터 의료현장에서 처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국내 사용이 허가된 지 6개월 여만이다. 빌로이 처방을 위해 필수적인 유전자 변이 검사법에 대한 규제(동반진단 검사법) 때문에 실제 사용이 늦어진 탓이다. 의료계와 제약업계에서는 동반진단 검사법은 이중규제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신속한 신약 활용을 위해서는 규제개선이 시급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1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국아스텔라스제약은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클라우딘18.2 표적항암제 빌로이를 다음달 3일 국내 출시한다.
빌로이는 로슈의 '허셉틴(성분명 허투주맙)' 이후 14년 만에 전이성 위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지난해 9월 국내 시판 허가를 받았다. 빌로이는 아스텔라스의 본사가 있는 일본을 시작으로 영국, 유럽에 이어 네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품목허가를 받았다.
다만 빌로이를 투여하려면 한국로슈진단의 의료기기인 '벤타나(VENTANA) CLDN18 (43-14A) RxDx Assay'를 사용해 면역조직화학염색검사(IHC)를 받아야 한다. 환자의 암조직에서 클라우딘18.2 단백질이 확인돼야 빌로이를 처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딘18.2는 위에서 발현·노출되는 단백질로 위암, 췌장암 등 특정 암종에서 과발현하는 경향을 보인다. 빌로이는 이 클라우딘18.2라는 표적을 찾아가 작용하는 첫 표적항암제다. IHC는 HER2 같은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의 바이오마커 양성 여부를 파악할 때 널리 쓰여온 방법이다.
문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검사 의료기기인 벤타나 CLDN18 (43-14A) RxDx Assay에 대해 건 신의료기술인지, 기존 기술인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신의료기술로 판단하면 안전성 등을 추가로 평가하기 위해 최대 15개월 정도의 기간이 더 필요하다. 반면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기존 기술로 보면 곧바로 출시가 가능하다. 심평원은 약 4개월 동안 검토한 끝에 최근 열린 회의에서 빌로이의 동반진단 검사법을 기존 기술로 분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김준일 한국아스텔라스 대표는 “지난해 말 들여와 냉장고에 보관되고 있던 빌로이 1차 물량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심평원의 고민이 길어지는 동안 현장 의료진과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빌로이에 대한 의료계와 환자들의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빌로이는 2건의 대규모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을 통해 유의미한 무진행생존기간과 생존 생존기간 연장 효과가 확인됐다. 무진행생존기간은 종양 크기가 더 나빠지지 않은 상태로 생존한 기간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환자 대상의 하위 분석에 따르면 빌로이 투약군의 무진행생존기간(중앙값)은 13.96개월로 비아시안 환자군(8.94개월)보다 길었고 전체 생존기간은 23.33개월로 비아시안(16.13개월)과 차이를 보였다. 의료계는 HER2 음성 위암 환자의 40%가량을 클라우딘18.2 양성으로 추정한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 때까지 빌로이가 활발하게 사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급여 첫 관문인 심평원 암질환심의위원회가 지난 12일 열렸지만 빌로이는 통과하지 못했다. 미국 기준 빌로이의 약값은 바이알당 1600달러(약 230만 원) 수준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빌로이 사례를 계기로 IHC 동반진단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라선영 대한암학회 이사장(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은 “신약 처방에 필수적인 동반진단 검사법의 허가를 받고도 사후 추가적인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섬유모세포성장인자수용체(FGFR2b) 억제제 등 새로운 바이오마커 기반의 표적항암제가 계속 도입될텐데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1분 1초가 소중한 암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동반진단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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