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누워있으면 뭐 해요. 친구도 사귀고 운동도 하고 돈도 벌면 일석 삼조죠.”
기습 한파가 출근길을 덮친 지난 17일 오전 8시. 이른 시간이지만 서울 광진구 중곡역 1번출구 인근 한 공터는 털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한 주민들이 저마다 페트병을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든 채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모두 인공지능 쓰레기통 ‘네프론’의 사용을 기다리는 인파다.
긴 줄의 끝에는 사람 키 높이의 쓰레기통이 있었다. 자신의 차례를 맞은 한 주민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하자 쓰레기 투입구가 열렸다. 한가득 들고 온 페트병을 원형 모양의 구멍으로 넣을 때마다 플라스틱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버린 페트병은 모두 20개. ‘적립’ 버튼을 누르니 총 200원의 포인트가 쌓였다는 문구가 나타난다. 광진구 주민 이 모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온다”면서 “벌써 커피 한 잔 값은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계의 정체는 스타트업 수퍼빈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이다. 라벨이 제거된 페트병을 넣은 이용자에게는 1개당 10원 꼴의 현금성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버려진 쓰레기는 AI가 재질과 오염 상태를 판단해 분류한다. 귀찮은 일로만 치부됐던 분리수거를 쏠쏠한 용돈벌이 수단으로 만든 셈이다. 광진구 주민 이모씨는 “처음엔 신기해서 시작했다가 이젠 일상이 됐다”며 “우리 동네에선 늦게 오면 두 시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라고 했다.
네프론은 2015년 처음 등장했다. 시민들의 올바른 분리수거를 유도하고, 회수한 폐플라스틱 원료를 고부가가치 소재로 재활용하는 순환경제를 실천한다는 취지에서다. 개발사 측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네프론의 수는 14일 기준 1430대를 넘어섰다. 지난해만 400여 대가 새롭게 설치됐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네프론을 통하면 섞이거나 오염되지 않은 이른바 ‘고품질 재활용’이 가능해지고, 취약 계층에게는 소득을 제공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결 과제도 남아있다. 보상을 노린 ‘꼼수’ 이용자들도 함께 늘어난 탓이다. 포인트를 반복 획득하기 위해 가족 번호를 동원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이날 현장만 해도 한 사람이 여러 차례 줄을 서거나 일 최대 수거 용량인 30개를 넘는 페트병을 넣는 사례가 많았다. 이렇게 수거함이 꽉 차면서 이용자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한 주민은 “일주일에 두 번은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개발사 측도 타인 계정으로 이용을 삼가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비치하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일부 기계에는 본인의 휴대전화를 통해 인증 번호를 받은 뒤 분리수거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기능도 추가됐다. 김 대표는 “본인 명의 계좌로만 정산이 이뤄지도록 시스템 개선이 이뤄졌다”면서도 “과도한 인증을 요구할 경우 전체 이용자들이 불편해지는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대책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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