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국내 기업들을 지원사격하기 위한 반도체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정부·여당과 야당 대표가 모처럼 머리를 맞댔지만 반도체법의 핵심인 ‘주 52시간 근로 예외’ 적용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애꿎은 골든타임만 흘려보내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된 반도체 특별법은 여야 이견으로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이달 20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부와 국회, 여야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국정협의회 첫 회의에서 반도체 특별법도 함께 논의됐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최 권한대행은 “미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은 반도체 첨단 인력이 근로시간 제약 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며 “52시간 특례가 포함되지 않으면 반도체 특별법이 아닌 ‘반도체 보통법’에 불과하다”고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52시간 예외 규정을 3년간 한시적으로라도 적용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실제 이 대표는 이달 초 52시간 특례 적용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가 노동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다시 말을 바꾸고 양대 노총을 찾아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산업계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한 채 강성 지지층의 눈치만을 살피는 정치 행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전문경영인까지 지냈던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R&D는 특성상 집중 근로는 물론 시제품 개발 시점에는 초과근무와 밤샘 작업이 불가피하다”며 “반도체 산업에 묶여 있는 족쇄를 풀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 반도체 업계에서는 52시간 특례가 빠진 반도체법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당 고위 관계자 역시 “야당안대로 52시간 특례를 뺀 법안 통과도 검토했지만 업계에서는 우리가 해외처럼 보조금 지원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그 실익은 크지 않다는 반응”이라며 “결국 반도체법의 핵심은 52시간 특례 적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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