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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처럼 된 노동시장…韓 합의 창출능력 바닥”

[서울경제, 신년 고용·노동 좌담]

올 고용 상황, 암울…시스템·정부 역할론

시급한 개선 과제로 근로시간 경직성 꼽혀

양극화엔 민간 고용·원청 책임·생산성 제안

공정 보상 기반으로 갈등 해결력 복원 조언

최영기 한림대학교 겸임교수(왼쪽부터),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신년 노동시장 진단 좌담회에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조태형 기자




“생산성이란 논의 없이 ‘정치판’처럼 느껴진다.”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덮친 올해 고용과 노동 시장을 진단하기 위해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좌담회를 관통하는 말이다. 일도양단(一刀兩斷)처럼 우리 사회의 불합리를 끊고 이정표를 만들기 위해 매 정부는 노동 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도 노동 개혁은 극심한 노사 갈등과 정쟁 속 방향을 잃었다는 평가다.

14일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뤄진 좌담은 2시간 내내 노동 시장을 넘어 우리 사회로 전위된 위기에 대한 우려로 채워졌다. 좌담은 시대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노동 시장의 구태를 ‘폐습’으로 규정하고 이 상황을 더 악화하는 정치권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노동 개혁의 필요성에 다시 공감하고 공정과 노동생산성이란 새로운 담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좌담은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을 좌장으로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최영기 한림대학교 겸임교수가 참여했다.

-1월 청년 취업자 상황이 나쁘다.(1년 전보다 21만8000명 감소). 건설업도 마찬가지다. 올해 경제와 고용시장을 어떻게 보나.

△조동철 원장=고령화는 구조적 측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경기 전망도 밝지 못하다. 올 연간 취업자는 (증가분을) 10만명 전망했는데, 전망치는 상황에 따라 더 낮아질 수 있다. 단 건설업은 건축허가 면적 등 선행지표를 보면 ‘최악’은 지난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 고용 시장은 지금보다 나을 수 있다. 계엄 정국의 큰 불안이라면 금융이다. 하지만 CDS프리미엄(국가 대외신인도 지표)도 3~4bp로 움직이면서 박근혜 탄핵 정국 보다 금융은 영향이 크지 않았다.

△허재준 원장=지금의 불확실성은 어떻게 탄핵 정국을 잘 조율하고, 수십년 동안 쌓인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에 달렸다. 고용동향 등 지표를 보면 ‘기본’은 하는 것 같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정책, 중국, 러시아, 중동 등 대외 불확실성은 있다. (정부가) 기회요인을 잘 찾아 중심을 잡고 나가면 걱정하지 않을 상황도 될 수 있다.

△최영기 교수=경기적인 사이클로만 보면 작년 12월 고용 지표(취업자 3년 10개월 만에 마이너스)는 흔치 않은 일이다. 올 1월에는 정부가 노력해 고용(실적)을 조금 끌어올렸는데, 민간에서 고용을 끌어올릴 유인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당분간 고용지표 개선을 위해 정부의 재정적 역할이 필요하다. 만일 선거철이 오면, 과거 사례처럼 예산 당국은 없던 예산도 만들 거다.

권기섭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신년 노동시장 진단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 논의가 멈췄다. 당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노동시장의 제도와 규범은 무엇인가.

△허재준 원장= 작년 계엄 상황이 벌어지기 전 60세 정년 후 새로운 고용 계약을 맺는 계속 고용이 (방법론적으로) 현실적이란 생각을 했다. 이 방식을 노동계는 찬성하지 않지만, 일반적인 컨센서스 과정(동의를 구하는 과정)이었다. (계속 고용은) 인구구조 변화를 대응하고 여성 경제 참여율 제고란 축도 건드릴 수 있었다. 최근 반도체 특별법 내 근로시간 유연성은 노동계의 전통적인 견해로는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주 52시간 상한제는 계기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 근로자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는 한해서 주 4일 근무까지 노사가 자율적으로 방향 모색에 관한 토론을 해봐야 한다.

△최영기 교수=노동시장 개혁은 오래된 숙제다. 정부 3년을 평가하면 3개 개혁(노동·의료·교육 개혁) 중 낙제를 면한 것은 노동 개혁이다. (개혁을 통해) 노사 관계를 협력적으로 전환하지 못했지만, 노사 관계의 만성적인 불법과 편법의 관행은 한 단계 넘었다고 본다. 하지만 임금, 노동시간, 노란봉투법(사용자 개념 확대·노조에 과도한 손배 제한), 반도체 특별법을 보면, 여전히 ‘정치권’이 걸림돌이다. 특별법 내 52시간제 유예도 찬성한다. 여야가 이 이슈를 정쟁으로 삼아 타협 보다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 걱정이다. 개혁은 정치 지도자의 각성과 국가적 개혁 과제를 주도할 (정치권 등의) 책임성이 필요하다. 노사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폐습이 사라지지 않으면 노사 변화와 노사 협력은 어렵다.

△조동철 원장=노동시장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예전의 폐습까지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점이다. 적어도 (우리 사회는) 어디에 ‘등대’가 있는지는 보고 가야 하지 않나. 국가는 언제까지 고용, 임금체계, 노동시스템을 획일적으로 규제하면서 가져갈 것인가. 어떤 기업은 월 또는 분기로 (근로시간 적용을) 하면 왜 안되는 지도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노동) 생산성 개념이 잊혀진 것 같다. 근로 후 임금은 컨트리뷰션(contribution·기여)로 볼 수 있는데, 기여를 적게 하는 근로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가) 비슷한 보상을 받는 게 맞는건가. 나이, 학벌, 아부(친분) 등 제 3 요인으로 보상이 결정되면 나라 전체가 비생산적인 상태가 된다. 생산성을 잘 맞추면 정년을 유지하거나 직원을 해고할 이유도 준다. 친구가 보잉사에서 60년 근속을 했다. 20대 초반에 기업에 들어가 80살이 된 거다. 미국은 정년이 없어서 가능하다. 어떤 결과라도 획일적으로만 설명하려들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신년 노동시장 진단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양극화는 청년 고용, 정년 연장, 세대 갈등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다.

△최영기 교수=양극화는 결국 기업 규모의 문제다. 중소·영세 사업장의 고용 규모가 너무 크다. (노동시장) 밑의 최저임금을 올리고 정규직화에 나서도 역부족인 결과를 낳았다. 이 상황은 문재인 정부(최저임금 고율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보여주지 않았나. 유럽은 최저임금과 노동기준을 높여 산업합리화를 촉진했다. 만일 우리가 이 유럽 방식을 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산업합리화 기금을 투입해야 한다. 단 기금은 영세사업장, 자영업자,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 등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포함해야 한다. 고용효과가 큰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단기 일자리 보다 생산성 높은 곳에 재정을 써야 한다.

△조동철 원장=중소기업과 대기업 임금 격차는 1980년대는 10% 정도였는데, 지금은 두 배(대기업 임금 100이면, 중소기업 임금 50 수준)다. 먼저 중국이 개방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한 중소업체의 구조조정인 안 됐기 때문이다. 대형쇼핑몰을 들어설 때 중소상권이 진입을 막는 문제도 보자. 대형쇼핑몰이 해당 지역의 고용을 흡수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경쟁력이 없는 곳에 (근로자를) 두는 일을 수십년째 해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기업 규모·고용 형태별 격차) 해결의 큰 전제는 고용을 흡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때 삼성공화국이란 말도 있지만, 대기업의 전체 고용 비중이 15%도 안 된다. 미국은 50%가 넘는다.

△허재준 원장=조 원장 진단처럼 우리는 대기업 종사자 비중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보다 현저히 낮다. 대만, 일본 반도체 업체 임금을 살펴봤는데 엔지니어라도 연 4500만 원 수준이다. 한국은 비슷한 일을 하는데 연 1억 원 이상이다. 대기업 종사자가 낮은 상황에서 대기업이란 ‘고연봉의 섬’이 있는 것이다. 현대차와 차 부품업체들 임금 수준도 보자. 두 곳은 초봉이 5000만~6000만 원으로 처음엔 비슷하더라도 10년 후 현대차는 1억 원이 넘고 부품업체는 여전히 현대차의 절반 수준에 머문다. 해결 방안은 사내하청이 있는 산업의 경우 원청기업과 원청 노사 모두 책무성을 발휘해야 한다. 직무도 크게 다르지 않고 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내 하청의 임금이 원청의 60% 수준에 불과하면 불만이 쌓이는 게 당연하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신년 노동시장 진단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대안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란 질문으로 대안을 묻고 싶다.

△조동철 원장=생산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노동 시장은) 생산성이란 논의 없이 ‘정치판’처럼 느껴진다. 결국 임금 문제, 원·하청 문제도 생산성으로 설명된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무너진 이유가 뭘까. 공산주의는 생산성과 근로자에 대한 보상이란 연결고리를 끊었다. 나에 대한 보상이 다른 요인으로 결정된다면, 아무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박윤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가 재밌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을 대상으로 임금과 학벌, 나이, 경력, 남녀 등 임금결정요인에 대한 회귀분석(어떤 변수가 다른 변수에 의해 설명된다고 보고 관계를 조사하는 방식)을 했다. 결과를 보니 우리나라는 임금결정요인이 너무 잘 설명되는데 미국과 일본은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 결과는 우리는 겉으로, 눈에 띄는 것으로 임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위 ‘간판’으로 말이다. 생산성은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등 본래 보이지 않는 점(순수 능력)으로 설명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이렇게 임금 설명이 잘되는 건 좋은 시스템이 아니다.

△허재준 원장=성장과 복원력이다. 20년 동안 성장과 분배 논쟁이 있었다. 성장이 먼저인가, 예산을 어디에 배분하느냐는 식이다. 트럼프의 등장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해도 시대가 뒤집어질 수 있다고. 우리는 시대를 대표하지 못하는 사람을 봐야 한다. 고성장이 이어진다는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렇게 첨예하게 됐을까. 성장을 추구하면서 적절한 사람이, 적절한 대책을 펴는 상황이 필요하다.

△최영기 교수=공정이다. 법규는 자율성으로 움직이고 임금은 생산성 기반에 기반하고 일한 만큼 공정한 뒷받침(보상 등)이 필요하다. 이견을 조율하는 합의 능력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는 합의창출 능력이 거의 바닥이다. 정치권은 이 상황을 개헌처럼 한방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국가에서 시작돼야 한다. 점점 국가의 정책 능력까지 소진되는 것 같아 암울하다.

최영기 한림대학교 겸임교수가 14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서울경제 주최로 열린 신년 노동시장 진단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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