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허위 이력을 내세우며 자신을 ‘세계적 조각가’라고 소개한 남성에게 속아 조각상 수십억 원어치를 구매해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조각 작품들은 모두 중국과 필리핀의 제작 공방 등에서 제작한 조형물이었으며, 논란의 중심에 선 조각가는 여러 차례 사기죄로 복역한 전과자였다.
25일 신안군 등에 따르면 대구지법 형사12부는 이달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A(72)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20시간도 함께 명령했다.
A씨는 경북 청도군과 전남 신안군에 허위 이력을 내세워 조각 작품을 납품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청도의 경우 “기망 행위가 있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신안 사건에 대해서는 “경력을 속인 것은 맞지만 사기 고의가 있다고 보기는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강원 영월에서 미술박물관을 운영하는 A씨는 자신이 7세에 이탈리아 유명작가 카를로 카라의 양아들로 입양됐으며 파리 7대학 교수와 명예교수, 나가사키 피폭 위령탑 조성 조각가 등의 이력을 가졌다고 소개하며 두 지자체에 접근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300여 성당과 성지 성상 제작, 프랑스 ‘아트저널’로부터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예술인’에 선정됐다고 주장했다.
이 허위 이력을 바탕으로 A씨는 2022년 11월 청도군수에게 조각상 등을 설치하는 사업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 청도군수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2023년 6월 신화랑풍류마을에 20점의 조각 작품을 납품했고 그 대가로 2억9700만 원을 지급받았다.
이 과정에서 청도군은 ‘공공조형물 설치 심의’도 거치지 않았다. A씨는 납품한 조각 작품이 이탈리아 비앙코카라라 대리석을 사용했다고 했으나 수사 결과 청도에 설치된 작품은 중국의 조각 공장에서 제작돼 수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신안군도 2018년 1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A씨가 제작한 천사 조각상 318점을 하의도에 설치했다. 당시 신안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를 ‘천사의 섬’으로 꾸미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신안군은 A씨에게 18억68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신안군에 설치된 천사상 역시 중국과 필리핀 등지의 조각 공방에서 제작돼 수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러한 이력은 모두 허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초·중·고등학교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며, 10대 초반부터 철공소와 목공소에서 일했다. 또한, 20대부터 40대까지 상습 사기죄로 수차례 복역했으며, 1995년 교도소 수감 중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통과한 것이 유일한 학력인 것으로 밝혀졌다. 제대로 된 조각 교육을 받거나 해외에서 활동한 이력 역시 전무했다.
한편 신안군은 일단 검찰 항소 여부 등을 지켜보고 여론을 더 수렴해 천사상의 존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A씨의 경력을 높이 사 조각상을 설치한 것이 아니고 설치품 자체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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