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기업의 대표는 해외 출장이 잦다. 올 1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도 다녀왔다. 하지만 이 기업의 직원들에게 대표는 ‘악덕 사업주’다. 한 직원은 고용노동부에 “1년 중 제날짜에 임금을 받은 달이 네 번뿐”이라며 “대표는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해외 출장만 다닌다”고 제보했다. 고용부가 이 제보를 기반으로 A 기업에 대해 근로 감독을 실시한 결과 지난해 7월부터 직원 73명이 임금 16억 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A 기업의 대표처럼 직원 임금을 제때 주지 않은 사업주들이 덜미를 잡혔다. 상당수 사업주는 임금 지불 능력이 충분하면서도 체불을 했다. 5일 고용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상습체불 의심 사업장 120곳을 기획 감독한 결과에 따르면 89곳에서 144억 원 규모의 임금 체불이 이뤄졌다. 피해자는 5692명에 달한다.
89곳 중 13곳은 사법 처리가 이뤄졌다. 사법 처리 사업장을 보면 9층 규모의 호화 사옥을 지은 B 기업이 눈에 띈다. 이 기업은 약 10년 동안 약 560억 원 규모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경영이 어렵다면서 임금과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부터 직원 38명이 받지 못한 임금과 퇴직금은 16억 원이다. 고용부는 장애인을 다수 고용한 C 기업도 체불임금을 청산할 의지가 없다고 보고 사법 처리했다. 이 기업은 장애인 231명의 임금과 퇴직금 22억 원을 체불했다.
상당수 사업주는 체불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모른 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D 기업은 15명의 임금 1억 2000만 원을 체불했는데 고용부의 감독 직후 체불 사업주 융자 제도로 체불금 전액을 청산했다. 직원 임금 10억 원을 체불한 E 기업 대표 역시 감독에 나서자 부동산 매각으로 청산금을 마련하고 있다. 고용부는 89개 체불 사업장 가운데 75곳이 이런 방식으로 체불금을 청산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이번 감독이 효과적으로 이뤄진 배경으로 익명제보센터 운영을 꼽았다. 통상 임금 체불을 겪은 재직자는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게 두려워 감내하는 경향이 짙다. 고용부는 익명제보센터 운영 기간을 3주 더 늘릴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부로 제보한 근로자 중 신분이 노출되거나 피해를 본 경우가 없었다”며 적극적인 제보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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