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 전면 중단 결정을 내린 도널드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에 대해 유럽에서 자강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국내 정치권에서도 자체 핵무장론이 부각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기조를 유지했던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핵무장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태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중도층 공략을 위해 ‘우클릭’에 나선 만큼 안보 분야에서도 ‘핵 잠재력(핵 개발은 아니지만 언제든 핵 무장 가능)’과 관련된 보다 진전된 정책이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에서 ‘핵 잠재력’ 확보 논의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 출신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트럼프가 북과 핵 협상을 하는 것은 적극 지지하고 성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협상 과정 등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 핵무장을 하느냐, 안 하느냐와 같은 문제에 대해 (당 차원에서) 금기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안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며 “핵 활동 범위를 넓히고 핵 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핵 역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과 맞물려 유력 후보인 이 대표는 공개적으로 핵 잠재력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박 의원의 공개적 주장은 민주당이 지켜온 비핵화 기조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 대표의 실용주의 전략과 맞물려 핵 이슈에서도 우클릭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 우크라이나-미국 사태와 맞물려 핵 잠재력 확보에 대한 야권의 주장이 더 세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전반적인 야당 기류는 신중하다. 이 대표의 외교·안보 분야 책사로 꼽히며 향후 이 대표의 대선 외교·안보 공약의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위성락 의원은 “당내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핵 잠재력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의 오랜 입장”이라며 “순수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농축 재처리를 주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핵 잠재력 확보론과 관련해서는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며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일각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대표적인 대선 주자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아) 조급하게 핵무장 문제를 속단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 핵무장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강하지만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이미 물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변화의 조짐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자체 핵무장 주장이 유럽 사태를 만나 더 자유롭게 분출되는 양상이다. 나경원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 “핵무장은 단순한 군사적 선택이 아닌 국가 생존의 문제”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자주국방력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의원은 “제한적 의미의 조건부 핵무장이 대안이다. 북핵 폐기를 목적으로 하는 핵무장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며 구체적 해법으로 ‘미국 전략 핵잠수함의 한반도 상시 배치’를 제시했다.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교·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여권 유력 주자들도 ‘핵무장론’을 띄우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국도 최소한 일본 수준의 핵잠재력을 확보해 우리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핵무기 보유는 아니더라도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갖춰 유사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자는 구상이다. 오 시장은 11일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하는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한 한미 안보협력 전락’ 국회무궁화포럼 토론회에서 기조연설도 맡았다.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우리도 북핵 협상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당 대표 시절 농축 재처리 기술 확보 문제 등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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